어긋난 배관 직접적 원인은 '부실시공'…펜션사고 '총제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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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본부 "무자격 시공업자 등 9명 과실치사상 혐의 입건"
배기관 '왜, 언제' 어긋났나?…경찰, 뚜렷하게 규명하지 못해
안전점검에 대한 법률 모호해 사건 키워…개정 필요성 '제기'

경찰 수사본부 브리핑. (사진=유선희 기자)

 

일산화탄소 누출로 고등학교 남학생 3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친 강릉 펜션사고의 원인이 '부실시공·점검, 관리소홀'이라는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하지만 이번 수사의 핵심인 배기관이 '왜, 언제' 어긋났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면서 결국 총체적인 부실이 낳은 사고로 드러났다.

◇ 강릉 펜션사고, '총체적 부실' 드러나

경찰 수사본부는 4일 오후 강릉경찰서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미 설치된 가스보일러에 배기관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높이를 맞추기 위해 시공자가 배기관 하단을 약 10cm가량 절단했다"며 "절단 이후 배기관과 보일러 몸통을 연결하는 부위에 내연 실리콘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보일러 운전 시 발생된 진동에 의해 점차 연통이 이탈되면서 분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가스보일러를 설치한 시공자는 4년 전 건물주인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시공을 했으며 무자격자였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실리콘은 서로 다른 재질의 재료들이 맞닿아 있을 때 그 사이에 생기는 간극으로 인한 균열을 방지하기 위해 '틈 채움' 역할을 담당한다.

이 때문에 배기관을 연결하는 부위는 반드시 실리콘 작업으로 마무리 해야 했지만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사고펜션. (사진=유선희 기자)

 

또 경찰은 "조사결과 한국가스안전공사는 가스보일러 설치 이후 완성검사를 해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펜션에 4년 동안 가스를 공급한 업체 역시 시설점검을 꼼꼼히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와 사업법에 따르면 가스보일러 등 가스 설비를 시공할 때 한국가스안전공사로부터 완성검사를 받아야 한다.

완성검사 때는 '용기-배관-연소기(보일러)'를 모두 확인한 뒤 적합 여부를 판정해야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 절차가 부실하게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가스공급업체 역시 동법에 근거해 6개월에 1회 이상 가스사용시설의 안전관리를 해야하지만, 시설에 대한 점검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무자격 시공업자를 비롯해 한국가스안전공사 강원영동지사 직원과 펜션 주인 등 7명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불법 증축을 한 펜션 소유주 2명은 건축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중 보일러 설비 업자, 보일러 시공 기술자 등 2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여전히 남은 의문점…보일러 배기관 '왜, 언제' 어긋났나?

사고 펜션. (사진=유선희 기자)

 

하지만 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배기관이 '왜, 언제' 어긋났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가스보일러가 설치된 4년 전부터 실리콘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인 만큼 일산화탄소 누출로 인한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었던 '예고된 인재'였다.

경찰은 "배기관이 어긋난 시점은 특정하기 어렵다"며 "학생들이 머물기 열흘 전에 묵었던 외국인 유학생들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또 "국과수 실험 결과 급기관에서 발견된 벌집은 보일러의 불완전연소를 유발했을 수 있다"며 "다만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펜션에 있는 다른 방과 달리 사고가 발생한 201호만 보일러 기종만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처음 이 건물을 운영한 주인이 본인용으로 따로 마련한 것"이라며 "201호를 제외한 다른 객실에는 배기관 하단이 잘린 흔적은 없었지만, 내열 실리콘 작업은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 건물이 게스트하우스에서 펜션으로 리모델링 했던 지난 2017년에 가스보일러가 수리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2014년 처음 보일러가 설치된 이후 따로 손을 댄 적은 없다"고 말했다.

건물 외벽으로 배기관 등이 빠져나와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한편 이 건물이 불법증축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를 승인한 지자체가 허가 당시 제대로 점검을 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수사의 가장 핵심인 배기관이 어긋난 시점과 직접적인 이유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면서 꽃다운 아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친 이번 사고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게 됐다.

이번 강릉 펜션사고를 '총체적 부실이 결합된 예고된 인재'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가스안전점검에 대한 법률 모호…개정 필요성 '제기'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은 법률이 모호한 탓에 관리체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가스안전점검에 대한 법률은 현재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와 사업법'에 근거하고 있지만, 점검대상이 모든 시설에 적용되는 것인지 소규모 주택에도 적용되는지 기준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안전점검에 대한 범위가 뚜렷하지 않은 탓에 점검 주체도 불분명한 실정이다.

어긋난 배기관. (사진=강릉소방서 제공)

 

실제 이번 사고에서도 한국가스안전공사는 "가스통이나 계량기 등 '건물 외벽' 쪽만 담당"이라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가스공급업체는 대부분 영세한 민간업체로 전문인력 한계 등으로 가스를 공급하면서 일일이 시설을 점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박재성 교수는 "법률이 포괄적으로 돼 있다보니 '법의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그 결과 부실점검·관리가 벌어졌다"며 "분산된 법률 안에서 점검을 담당해야 하는 주체들은 정작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만 반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강릉 펜션사고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모호하고 포괄적인 법률 개선이 필요하다"며 "안전점검을 관리감독해야 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지자체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점검방식과 계획을 세워 부실한 점검이 이뤄졌을 때 처벌하는 등 적극 나서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수사본부도 "농어촌 민박의 가스안전관리 규정, 가스공급자의 보일러 안전점검 항목 등 일부 미흡한 점 등에 대해서는 관계 기관에 통보해 개선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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