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착공 없는 착공식,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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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수 칼럼]

26일 오전 북한 개성시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 참석한 이강래(왼쪽부터) 한국도로공사 사장, 김정렬 국토부 차관,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 등이 서울-평양 표지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착공식은 공사를 시작할 때 하는 기념식이다.

착공이 없는 착공식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런 착공식이 26일 오전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열렸다.

이 착공식에는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라는 이름이 걸렸다.

남북의 주요인사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침목서명식, 궤도체결식, 도로표지판 제막식 등 착공과 관련된 행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 착공식은 착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착공식 뒤에 바로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공사가 시작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는 남북정상이 4.27 판문점 선언에서 추진하기로 했고, 9월 평양선언에서 올해 안에 착공식을 갖기로 합의했던 사안이다.

그렇지만 착공은 북한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로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공사를 위한 기계와 장비가 대북 물품 반입 제재로 북한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착공 없는 착공식이 열린 까닭이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뒤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정상의 합의에 따라 착공식이 열렸지만 엄밀하게 말해 착공식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점은 문재인 대통령도 익히 인정하고 있는 바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실제로 착공, 연결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국제 제재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며 "착공이 아니라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착수식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착공식이 사업에 착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착수식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말장난 같기도 하다.

통일부도 착공식은 했지만 당장 공사는 힘들다는 점을 시인했다.

"착공식 이후에 추가·정밀조사, 기본계획 수립, 설계 등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며 실제 공사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상황을 보아가면서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내 주요 정당으로선 유일하게 착공식에 불참한 자유한국당은 이 점을 물고 늘어졌다.

'언제 착공할지 기약없는 착공식', '무늬만 착공식', '실체없는 착공식'이라고 맹비난을 가했다.

물론 착공식이 이런 비판을 받을만한 여지는 있다.

연내 착공식이라는 남북 정상간의 합의 이행을 위해 착공도 하지 않으면서 착공식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철도공동조사단 열차의 통과를 위해 장병들이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비무장지대내 경의선철도 통문을 열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남북간 여러 장애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착공식을 가진 것은 평가할 만하다.

남북이 신뢰를 바탕으로 언제든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는 남북이 경제협력을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임에 틀림없다.

남북 정상이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시한을 못박으면서까지 합의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은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동아시아철도공동체의 출발점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 필요성은 2천년대 초반부터 주장됐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유라시아와 한반도 철도를 잇는 '철의 실크로드' 구상을 발표하고 추진했다.

철의 실크로드가 완성되면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에 EU(유럽연합)와 비슷한 경제권 구축이 가능해진다는 구상이었다.

부산서 기차타고 시베리아철도로 유럽에 가고 한반도가 고립된 섬에서 탈피해 물류와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것은 누구나 꿈꾸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현 단계에서 주목할 것은 착공을 막는 장애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북한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제재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착공은 불가능하게 된다.

착공식에 대해 비판을 한다면 착공식이 아니라 오히려 착공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를 제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그 장애제거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달려 있다.

김 위원장이 약속대로 비핵화에 적극 나서게 되면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장애는 일순간 제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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