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두 죽음 사이 - 90살 ‘인생 후르츠’와 61살 ‘퇴역 기무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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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의 칼럼]

 

벌써 일주일 전이다. 다큐영화 ‘인생 후르츠’를 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퇴역 장군이 13층 오피스텔에서 투신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극장에서는 자연사로 생을 마감한 행복한 노인을 보았는데, 극장 밖에서는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불행한 전직 기무사령관을 본 셈이다. 우연히 마주친 두 죽음 사이에서 나는 몹시 혼돈스러웠다.

후르츠 노인은 일본의 경제부흥기 당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뉴타운의 설계를 고집했다. 주택공단의 경제논리에 밀려 자신의 건축철학이 왜곡되자 현실에서 물러나 나무와 자연을 벗 삼아 정직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360여 평의 땅을 마련해 자신의 설계대로 집을 짓고 나머지 공간에는 나무를 심고 텃밭을 만들어 그곳에서 평생 채소와 과일을 기르며 살았다. 그는 정직했고 성실했으며 무엇보다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관점에 따라 노인의 인생은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어느 봄날 평소처럼 텃밭에 나가 김을 맨 뒤 낮잠을 자다가 조용히 영면했다.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한 가족장으로 행복한 생을 정리했다. 향년 90살이었다.

투신한 퇴역 장군에 대해 찾아보았다. 올곧은 군인으로 살아왔지만 그에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과 육사 동기라는 경력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의도된 것이든 우연이든 그가 박지만과 육사시절 각별한 친구 사이였다는 것이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누구라도 박지만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전 기무사령관이 있게 된 것 뿐이었다. 결국 인연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새옹지마처럼 화와 복을 모두 가져다 준 셈이 됐다.

그가 기무사령관으로 재직하던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그는 기무사령부 본연의 업무에 따라 정보 수집을 지휘했고, 그것은 기무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고 했다. 그 후 4년이 지나 그는 사건 당시 유가족들을 불법 사찰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추측컨대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죄가 되고 행위가 악이 되는 것을 보면서 혼돈과 좌절, 실추된 명예와 책임감 때문에 고통 받은 것 같다. 그가 선택한 마지막은 자신의 몸을 공중에 던지는 것이었다. 그의 나이 향년 61살이었다. 그가 A4용지 두 장에 써내려간 유서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자살에 대한 논쟁과 연구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고대 스토아학파는 자살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인간다운 삶이란 이성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러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없어지게 된다면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중세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살은 자연법칙을 역행하는 것이며 공동체에 해악을 주며 신의 권위를 침해는 것이라면서 죄악시 했다.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중세를 거쳐 현대사회로까지 이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자살을 결심할 때는 스스로 실존의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의 지적이다.

다큐영화 ‘인생 후르츠’에서 자연사한 노인과 스스로 목숨을 던진 ‘퇴역 기무사령관’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닮은 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신념에 충실한 인생을 살았다. 후르츠 노인은 늙어서까지도 자신의 건축철학에 흔들림이 없었다. 퇴역 기무사령관은 예기치 못한 세월호 때문에 오점을 남기고 적폐의 대상이 됐지만 군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떳떳했음을 목숨을 담보로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로 마감한 퇴역 장군의 61년 인생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실존의 의미를 잃은 나머지 목숨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결백과 명예를 인정받으려는 결행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의 투신은 후르츠 노인의 자연사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90살 노인이 밟아온 영욕의 긴 세월을 떠올리면 그렇다. 어느 날 밀물처럼 들이닥친 재앙일지라도 불굴의 용기로 견디며 살아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그들 두 사람 모두 소인배들과는 달리 자기 신념이 확고했다는 점이다. 줏대도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연줄을 대고 아부하는 모리배나, 정권이 바뀌어도 승승장구하는 간신배들과는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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