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부끄러운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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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수 칼럼]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12일 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20대 청년 사망사고의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사진=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정규직 안 해도 좋습니다. 더 이상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0월 18일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장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한 비정규직 발전노동자가 울먹이면서 한 발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 노동자와 같은 발전소(태안화력발전소)에 근무하던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야간에 홀로 석탄운송설비를 점검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숨진 김용균 씨(24)는 태안화력발전소의 석탄취급설비 운전을 위탁받은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이었다.

김씨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 9월 한국발전기술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입사 3개월차인 김씨는 현장에서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을 해왔다.

발전소 운영사들은 설비 점검 등 운영과 안전관리에 꼭 필요한 업무마저 하청업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하청업체에게 외주화하는 업무는 힘들고 위험한 일이 대부분이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이뤄지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는 이번 김씨의 사고처럼 죽음을 불러올 수 있어 '죽음의 외주화'라는 말까지 나온다.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는 통계가 사실로 보여준다. 지난 2012년부터 5년간 한국남동발전 등 5개 발전사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346건 가운데 97%인 337건이 하청노동자업무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2008년부터 9년 동안 이곳에서 사고로 사망한 40명 가운데 하청노동자가 92%인 37명이었다.

위험과 죽음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는 발전소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공기업과 대기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2015년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폭발사고,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지난해 잇따른 크레인충돌·전복사고, 지난 9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CO2 누출사고 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사고의 희생자는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이들의 희생은 구조적인 문제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출발부터 산업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하청업체는 대부분 규모가 작고 영세하다. 노동자도 김씨와 같이 1년 단위 계약직을 주로 고용하기 때문에 숙련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본사 직원들이 기피하는 힘들고 위험한 일을 담당한다.

근무여건이나 처우도 열악하다. 숨진 김씨가 했던 설비점검 업무는 원래 발전소 정규직이 2인 1조로 했다고 한다. 그런 업무를 입사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김씨가 야간에 혼자 감당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김씨의 죽음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 임금 체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어렵고 위험한 일을 맡기면서 사지로 몬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사회적 약자를 사지로 모는 것은 국제사회에 명함도 내밀 수 없는 비겁한 일이다.

이것은 해당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전반적인 기업문화의 일부가 된 측면도 있다.

수많은 기업에서 해마다 발생한 사례가 그것을 증명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큰일 난 것처럼 떠들다가도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잠잠해지는 것이 반복돼 왔다.

사고 뒤 재발을 막기 위해 관련법 개정안이 그동안 여럿 발의됐지만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정부가 지난달 1일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아직까지 한 번도 논의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를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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