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형 문자라고? 고대 이집트 '그림 문자'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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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어디까지 아니?] ⑤고대 이집트 그림 문자(hieroglyph)는 상형 문자가 아니다
제주까지 진출해 온 예멘 난민, 전세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자말 카슈끄지 암살. 중동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 중동 지역은 예멘과 시리아의 내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 미국과 러시아의 개입, 이슬람국가(IS)의 잔존 등으로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큰 변수 중의 하나인 원유 가격 변동의 진앙지이기도 하고 한국 기업의 플랜트 수출의 주요 시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중요성에 비해 아직도 우리는 중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우리가 중동에 관하여 잘 모르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점에 대한 중동 전문가의 연재글을 싣는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예멘 난민 문제
② 순니(Sunni)/쉬아(Shia) 갈등
③ 석유 자원이 축복인가, 저주인가?
④ 중동도 동양이다
⑤고대 이집트 그림 문자(hieroglyph)는 상형 문자가 아니다


우리가 중동에 관하여 잘못알고 있는 것 중에 또 다른 대표적인 것이 고대 이집트 그림 문자(히에로글리프)를 상형 문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1400여 년간 유럽의 수많은 학자들과 여행가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문자는 상형이 아니라 표음 문자이다.

즉 음을 나타내는 알파벳이다. 한 예로 사자는 사자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영어의 'L' 발음을 올빼미는 'M' 발음을 의미한다.

그림 자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고대 이집트 표음문자 알파벳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이집트 고대 그림 문자는 기원전 3100년경에 메네스 왕에 의하여 상/하 이집트가 통일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그전에도 미완성이지만 사용되었다.

나일 강 유역 기자의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의 내부뿐만 아니라 기타 수많은 파라오의 피라미드, 오벨리스크, 동상, 신전 및 남부 룩소르의 왕과 왕비의 석굴 무덤 내부에도 화려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기원전 30년 이집트가 로마제국에 점령당하면서부터 그림 문자의 사용이 급감하면서 서기 400년경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약 14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뜻을 해석하면서 이를 상형 문자로 생각했다.

그 원인은 우선 그림의 묘사가 실물과 너무나 유사하기에 이들을 기초로 뜻을 해석하려고 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집트인들이 그림을 발음을 나타내는 알파벳으로 사용했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 세기동안 이러한 접근 방법으로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사원에 있는 그림 문자들을 해석하여 수많은 책과 사전이 출판되고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중세의 연금술과 같이 '가짜과학(pseudo-science)' 이었다.

이러한 잘못된 접근 방법이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발견된 비석의 한 조각인 로제타스톤(Rosetta Stone)에 의해서 바로 잡아지게 되었다.

이집트 '피라미드'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은 38,000명의 군인들과 167명의 학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십자군전쟁 후 처음으로 이집트와 유럽이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이집트 전역을 점령하면서 수많은 고대 유물들을 수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진행되는 동안 넬슨 제독의 영국 함대는 알렉산드리아 인근의 아부 키르(Abu Quir)에 정박해있던 나폴레옹 함대를 대파하면서 프랑스 원정군과 학자들은 이집트에 갇히게 되었다.

또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해서는 오스만제국의 원정군이 이집트로 진군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정치 불안이 전개되어 나폴레옹은 1799년 8월 영국 함대의 포위망을 뚫고 야반도주로 귀국하였다.

이와 같이 전황이 급반전되자 이집트에 주둔하던 프랑스군은 영국군과 오스만군의 공격에 대비해 해안가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던 중 알렉산드리아에서 약 56km 떨어진 로제타(Rosetta) 지역의 성 줄리엔 요새(Fort St. Julien)에서 돌비석의 일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흑색 현무암 비석 조각을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라 로제타스톤이라 명명하였다.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인 로제타스톤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로제타스톤의 비문은 세 가지의 글씨로 새겨져있다.

맨 위에 고대 이집트 그림 문자, 다음이 이집트 토속 문자인 데모틱(demotic), 마지막으로 고대 그리스어이다.

당시 프랑스 학자들은 비문을 잉크 및 석회로 된 탁본을 떠서 프랑스에 있는 그리스어 전문가에게 보내서 번역을 하게 했다.

프랑스의 사시(Sylvestre de Sacy)와 영국의 토마스 영 등 많은 언어학자들은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중간의 데모틱 비문부터 해독을 시작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가장 밑에 잇는 고대 그리스어를 해독하면서 그림 문자의 해독을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대영박물관에 보관중인 로제타스톤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그 후 장기간의 노력 끝에 1822년 프랑스의 샹폴리옹(Jean-Francois Champollion)은 로제타스톤의 그림 문자들이 발음 기호일 가능성에 염두를 두고 이집트 나일 강 상류 아스완 근처의 필레(Philae) 섬에 있는 신전의 비문과 비교연구하면서 고대 이집트 그림 문자가 표음 문자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와 같은 그의 발견이 1824년 파리에서 한 권의 책(Precis due Systeme Hieroglyphique)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이집트 문자는 한 단어나 한 문장에 동시에 발음과 뜻을 가진 글자를 병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사실로 확인되면서 사시, 토마스 영 등으로 이어지는 장기간에 걸친 이집트 문자 해독의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간 추측과 의문에 쌓여있던 수많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무덤의 벽화뿐만 아니라 파피루스에 써진 문자들이 해독되면서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획기적인 성과를 보게 되었다.


그 후 19세기 후반에는 수천 년에 달하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종교에 대한 비밀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고대 이집트를 연구하는 이집탈러지(Egyptology)가 학문의 한 분야로 단단히 자리 메김을 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매년 여러 연구 기관에 의하여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새로운 학설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박찬기 교수의 이름을 이집트 고대 표음문자로 쓴 것이다.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샹폴리옹이 밝힌 바와 같이 이집트 그림문자는 한 단어나 문장에 동시에 발음과 뜻을 가진 글자를 병행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 고대 그림 문자의 핵심 구조는 그림들이 발음을 나타내는 알파벳이다.

알파벳으로 해독하지 않으면 해독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설마 그림을 발음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긴 시간 동안 상상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이는 지금도 우리가 중동의 여러 문제에 접근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군에 빼앗긴 로제타스톤은 현재 대영박물관 입구에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다.

※저자인 박찬기 전 명지대 교수는 한국중동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메나코르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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