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타벅스의 '종이빨대'가 부럽고 무서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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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의 칼럼]

갈 때마다 스타벅스는 성업 중이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홀로 공부하는 대학생부터 안락한 소파에 서넛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열정이 가득하다. 스타벅스 만이 갖고 있는 이미지 덕분이겠지 하고 인정하고야 만다.

이번에는 스타벅스가 '종이빨대'를 선보였다. "플라스틱의 위해성에 대응해 친환경 재료로 바꾼 것이로군." 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전통적인 철학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이 회사를 홍보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만의 영적이고 예술적이며 감각 있는 철학을 통해 여전히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한국사회 주류임을 자처하는 각계각층의 실상을 바라보고 싶은 것뿐이다.


스타벅스는 컵의 사이즈 명칭부터 색다르다. 그냥 '스몰' '미디엄' '라지' 이렇게 편하게 주문하면 되지만 이곳에서는 어림도 없다. 그들은 사이즈의 고정관념조차 깨트렸다. 작은 사이즈의 이름이 키가 크다는 '톨'(Tall)이다. 중간은 이탈리아어로 크다는 뜻인 '그란데'(Grande)다. 가장 큰 사이즈는 이탈리아어로 숫자 20을 뜻하는 '벤티'(Venti)다. 20온스 부피의 커피라는 의미다.

사이즈 이름이 참 쓸데없이 귀찮게 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언어가 실체를 구성한다'는 언어학자들의 논리를 생각해보면 다르게 다가온다. 새로운 호칭 자체가 단순한 사이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스타벅스가 처음 사용한 사이즈 명칭이 지금은 다른 회사까지도 일반화 되었으니까.


이곳에는 '중간'이 없다. 용량은 중간이지만 이름은 '그란데'다. 그들에게는 중간지대는 힘이 없고, 중도는 이류 아니면 삼류로 전락한다는 신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세상은 급변해서 어정쩡한 중간은 침체되거나 망했다. 양 극단이 성공하고 있다. 크거나 작거나 해야지 중간은 외면 받는 시대다. 스타벅스는 일찍이 시대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교회, 스타벅스에 가다>의 저자인 레너드 스윗(미국 드루대 석좌교수)은 경험하지 못하는 곳, 참여하지 못하는 곳,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곳의 공통점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의 일부 주류들은 시대 흐름에 무감각하거나 중간지대에 안주하려하고 안전한 보호망을 찾는다. 좀처럼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법조인도 종교인도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경험도 제공하지 않고, 참여도 제한한다. 그러니 관계망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 공감하고 연대하며 공통분모를 찾아 분노하고 대항하지만 주류들은 외면하거나 방어에 급급하다.

정치인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국회의원이 세금도둑이란 소리를 듣는가 하면 선거구 개편을 놓고 예산안을 볼모로 잡는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가 하면 전직 대법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고 도지사 부인의 SNS 진위를 놓고 벌어지는 공방도 한심하다. 기업인들은 부만 축적했지 윤리적으로는 진일보하지 못한 채 사고가 터질 때마다 수습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성직자들조차 여전히 폐쇄적이고 게토처럼 세상과 담을 쌓아 자기들만의 성채 속에서 살아간다.

주류들은 이처럼 시민들에게 경험하게 하고 참여하도록 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관계망을 통해 시대 흐름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시민들을 답답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적의를 키우게 만든다.

스타벅스에 들러 '종이빨대'를 볼 때마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고정관념과 중간지대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한국사회 일부 주류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주류들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사고 뉴스를 접할 때마다 도심 곳곳에서 성업 중인 녹색 심벌의 철학이 부럽고 한편으로는 두렵다. 부러운 것은 당연한데 두려운 이유는 뭘까. 일개 커피 기업이 품고 있는 철학보다도 못한 한국사회 일부 주류들의 뻔한 미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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