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잔에 1포인트' 유흥업소 필리핀 주스걸의 무대없는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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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6-2(예술흥행) 비자로 들어와 미군 클럽과 유흥업소로
주스 팔며 포인트 모아야 추가수당 받을 수 있어
포인트 못 채우면 '2차', 몸무게 검사까지
여성 응답자 중 55%가 성폭력 경험

가수의 꿈을 안고 '예술인 비자(E-6-2)'로 한국을 온 필리핀 여성이 미군기지촌과 유흥업소에서 무대 없는 삶을 살았다. 테이블차지를 채우지 못하면 성매매도 나가야했다. 19살이었던 한 필리핀 여성의 5년 한국 생활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1잔에 1포인트' 유흥업소 필리핀 주스걸의 무대없는 5년
계속

미군 기지촌 클럽의 모습. (사진=기지촌 여성들을 지원하는 '두레방' 제공)

 

한국의 겨울은 추웠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불러 손에 쥔 '예술인 비자'로 5년 전 인천공항에 내렸던 날, 마중 온 봉고차는 한 룸살롱 앞에 멈춰 섰다.

파인애플과 코코넛을 팔아 대부분 생계를 꾸리는 필리핀의 어느 섬마을에서 가수의 꿈을 안고 온 자스민(24‧가명)의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무대는 없었다. 룸이 여럿이었다. 업주와 매니저, 웨이터와 봉고차 운전사가 손가락으로 자스민과 함께 온 필리핀 여성들을 가리켰다. "쟤는 여기, 얘는 저기".

이곳에 먼저 온 필리핀 언니가 물었다. "어떤 상황인지 알아?". 덫에 걸린 느낌이었다. 드레스룸에 걸렸던 짧은 원피스 하나를 그날 밤부터 걸쳐야 했다.

19살이었던 자스민은 이날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첫 세 달은 급여가 없었다. 그 뒤로 업소에서 주는 수당 40만원, 한국행을 소개한 '기획사'가 주는 40만원을 합쳐 80만원정도를 받았다. 기획사가 수수료로 받아갔다는 돈을 만져본 적은 없었다.

수당은 포인트를 쌓아야만 받았다. 이를 테면 1만원짜리 주스 한 잔에 1포인트였다. 클럽에서는 이걸 팔아 120포인트, 많게는 350포인트를 모아야 했다.

'TC'라고 불리는 테이블차지를 매달 75시간 채우는 방식으로 수당을 받는 업소도 있었다. 업소에서 1시간에 30만원을 받는 술상 메뉴에 자스민의 할당 시간을 채워야 했던 것이다.

TC는 매니저가 체크했다. 10일 마다, 25시간 이상 룸에 들어갔는지 확인했다.

쿼터를 채우지 못하면 '바 파인(bar fine)'이 있었다. 성매매를 뜻하는 2차를 나가는 게 벌금이었다.

매니저는 '마마상'이라고 불렀다. 술집에서 오래 일한 여성들이었다. 미군들이 오키나와 술집에서 만들어 퍼진 말이라고 했다.

마마상은 몸무게도 관리했다. 45㎏가 데드라인이었다.

자스민은 화장실이나 드레스룸에서 몰래 몰래, 빨리 빨리 끼니를 떼웠다. 배도 고팠지만 빈속에 마시는 술이 괴로워서였다.

마마상은 이따금 코를 킁킁거리며 식사 현장을 덮쳤다. 적발되면 현금 3만원이었다.

미군 규모가 줄고, 미군에서 클럽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필리핀 여성들은 이태원은 물론, 수도권 밖 지역까지 옮겨다녔다.

자스민도 4년 전쯤부터 국내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여권은 업주에게 있었고, 업주는 심심풀이처럼 추행을 했다고 한다. "경찰에 이야기하면 넌 감옥에 갈거야"는 말에 꼼짝할 수 없었다.

국가인권위에서 2014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예술인 비자로 체류하고 있는 여성 응답자 중 55%가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업주와 관리자가 52.4%, 손님이 30.5%, 기획사 관리자가 26.8%였다.

※ 이 기사는 한 필리핀 여성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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