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들이 말하는 한국 힙합의 현주소…'리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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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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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요계 변방에 자리했던 힙합은 2000년대 들어 가장 트렌디한 음악이 됐다.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온 노래들이 음원차트를 장악한 지 오래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 래퍼 키디비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가사를 쓴 혐의로 기소된 래퍼 블랙넛, 마약 투약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래퍼 씨잼, 여성 혐오 논란을 일으킨 곡 '페미니스트'를 발표한 래퍼 산이. 올 한해 한국 힙합은 눈부신 성취만큼이나 숱한 사건·사고로 논란을 낳았다.

한국 힙합은 약자를 혐오하지 않을 순 없는 걸까, 엠넷 '쇼미더머니'는 래퍼들에게 구원인가 지옥인가. 힙합 다큐멘터리 영화 '리스펙트'(Respect)는 이런 질문에서 탄생했다.

3년 전 단편영화 '둘이, 걷다'로 데뷔한 심재희 감독은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을 호스트로 앞세워 래퍼 12명을 인터뷰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 제목 '리스펙트'는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힙합계의 중요한 정신이다.

인터뷰한 인물 중에는 허클베리 피, 더 콰이엇, 도끼, 딥플로우, MC메타, 빈지노, 산이, 스윙스, 제리케이, JJK, 타이거JK, 팔로알토 등이 포함됐다.

'쇼미더머니'를 대하는 래퍼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출연하든 안 하든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던 타이거JK는 예술인을 상품화하는 자본 권력 앞에서 느꼈던 환멸을 털어놓는다. 끝내 섭외 제안을 거부했던 제리케이는 "래퍼들이 공손하게 심사위원 앞에 줄 서고, 무대에선 거칠게 랩한 뒤 다시 공손히 인사하는 게 연기 같았다"고 꼬집는다.

JJK는 "나중에 '쇼미'에 나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보여줄걸"이라고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출전을 결심하고, 도끼는 "저항해봤자 방송국 시스템이 사라질 게 아니니 제대로 이용해보자"고 말한다.

뼈아픈 반성도 나온다. 우리 래퍼들은 미국의 사회적 약자들처럼 언제 총 맞아 죽을까 봐 두려움에 떨지도, 인종차별에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 힙합은 대체 무엇을 상대로 저항하느냐고 되묻는다.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단 제리케이는 "돈 이야기 말고는 쓸 가사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며 "정말 돈 생각만 하고 산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어떤 사건이 발생해 마음에 큰 변화가 있는데도 랩으로 풀어내지 않는다면 비겁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더 콰이엇은 "철학이 동반돼야 한다. 외적 성공(을 과시하는 랩은) 증명 차원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 안에 어떤 생각이 공존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더 좋은 뮤지션, 그리고 인간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는 12명의 래퍼가 비트를 걷어낸 무반주로 자신들의 대표곡을 선보이는 장면을 삽입했다. MC메타가 경상도 사투리로 우리말의 맛을 살린 랩을 펼치는 부분이 백미다.

한편, 산이는 이수역 남녀 폭행 사건을 계기로 쓴 '페미니스트'란 곡이 논란이 되자 '리스펙트' 관객과의 대화(GV) 참석을 취소했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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