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의 도넘은 강경대응, 적반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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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수 칼럼]

도망가도 시원찮을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대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귀 낀 사람이 성내는 것처럼 주객이 전도된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조선 인조 때 학자 홍만종은 <순오지(旬五志)>에서 그 뜻을 "잘못한 자가 오히려 상대를 업신여기고 성내는 것을 빗댄 것이다(賊反荷杖 以比理屈者反自陵轢)"로 풀이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행태는 적반하장이란 표현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3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이춘식씨(94)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리기 위해 착석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대한 강경 대응에서다.

연일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6일 이 판결에 대해 "폭거이자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교 최고당국자가 다른 나라 사법부 판단에 대해 '폭거'라는 거친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직접적인 공세도 펼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 기업 대신 배상하는 입법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국제사업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강제징용 판결과는 관계없는 문제를 끄집어 내 압박강도를 높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조선업계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이 WTO(세계무역기구) 룰에 위반된다며 WTO 제소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일본 정부의 WTO 제소방침은 지난 6월부터 결정된 것이지만 지금 시점을 택한 것은 강제징용 판결과 연결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려는 속내가 엿보인다.

일본 정부는 이렇게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나름의 논리를 펴고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 문제도 모두 해결됐는데 또다시 배상문제를 들고 나오냐는 것이다.

청구권 협정 2조 1항에는 '한·일 양국 간에 국가는 물론 국민의 재산·권리·청구권이 완전히·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돼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한국 정부가 나서 협정을 체결하고 충분한 보상금을 받아간 만큼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도 한국 정부가 책임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한일협정의 청구권이 두 나라간 정치적 합의에 따라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한 것이지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청구권 협상과정에서 한일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았다.

한일협정은 합법적인 식민지배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강제징용은 불법적인 것이어서 한일협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이 1940년대 일제에 강제징용 피해를 당한 4명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 30일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서울 대법원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이자 재상고심이 시작된 지 5년 2개월만의 판결이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폭거'라고 비난하고 나설 때 이런 측면까지 제대로 다 살펴봤는지 의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강압적이고 불법적인 식민지배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올 발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나올만한 상황이다.

더욱이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마치 한 통속인 것처럼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일 정부 간에는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외교부는 "일본의 책임있는 지도자들이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문제의 근원은 도외시한 채 우리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계속적으로 행하고 있는데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보실장은 국회에서 "일본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을 계속하면 우리 정부도 이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양국의 대응 정도에 따라 양국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당장 이달 중순 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한일 정상간 회담도 열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한다.

이번 징용판결 이전만해도 올해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쑥 들어가고 말았다.

적반하장의 뒤틀린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도둑이 몽둥이를 내려놓고 잘못을 구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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