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립유치원과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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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사진=자료사진)

 

히브리어로 '가나브'는 도둑질이라는 뜻이다. 구약성경에만 36번 등장한다.

유대 율법의 근간인 십계명에도 '도둑질 하지 말라'는 여덟 번째 계명으로 나온다. 하지만 인류가 지은 최초의 죄는 바로 '도둑질'이다.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립유치원 비리의 본질은 죄의식 없이 국민 세금을 멋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CBS 노컷뉴스가 기획시리즈(CBS 노컷뉴스 기획 시리즈-고삐 풀린 사립유치원, 학부모의 품으로)로 보도하고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폭로한 내용을 보면 우선 비리가 만연된 데 놀랍고 사용처도 눈을 의심하게 한다.

5년간 벌인 감사 결과 천 8백여군데 사립유치원에서 모두 5천 9백여건의 비리가 적발됐다.

사용 내용도 명품 가방을 구입하거나 아파트 관리비와 벤츠 차량 유지비에 충당하는 등 개인적 용도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또 급식 식재료 대신 술과 옷을 구입하거나 심지어 성인용품을 구입한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벌어질 수 있었을까?

2조원의 국가 지원금이 내 돈이 아니라 국민 돈이라는 도덕적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일부 사립유치원 운영자의 도덕적 해이가 우선 지적된다.

여기에다 사립유치원의 불투명한 회계 감사시스템과 이를 적발하고도 눈감아온 교육당국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행정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전국 사립유치원 2/3가 가입된 거대 이익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무소불위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한유총은 지난 1995년 창립된 뒤 정부의 유아교육정책이 추진될 때 마다 집단행동 등을 통해 정관계에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이번 사태에도 한유총은 말로는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뻔뻔한 태도는 여전하다.

유치원 감사 결과를 공개한 한 방송사를 상대로 명단공개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비리유치원을 공론화한 박 의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예고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덕분에 국민 여론은 더욱 싸늘해졌다.

도둑질을 한 사람이 오히려 몽둥이를 드는 것을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한다.

지난 10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사립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전국 사립유치원 운영자·원장들의 협의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회원들이 박 의원에게 토론 주제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조선후기 문학 평론집 순오지엔 '적반하장은 도리에 어긋난 자가 도리어 스스로 성내고 업수이 여긴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라고 기록했다.

하지만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유치원을 제외하고 많은 유치원은 최일선 유아교육기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게 억울할 수 있다.

그런 유치원은 앞으로 새롭게 마련될 투명하고 공정한 회계 감사시스템 아래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내 돈과 남의 돈을 가릴 줄 아는 분별력은 엉뚱한 화를 당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덕목이다.

어릴 때부터 보여주고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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