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 김명제 "잠실구장서 사죄의 시구 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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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로 이루지 못한 태극마크의 꿈, 휠체어테니스로 이뤄

촉망받는 야구선수였던 김명제는 음주사고로 장애를 얻어 휠체어테니스선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야구선수로 이루지 못한 태극마크의 꿈. 휠체어테니스선수가 되어 이뤘다. 하지만 여전히 김명제(31.OSG주식회사)의 가슴 한편에는 잠실구장이 남아있다.

김명제는 김규성(55·한샘 직장운동부)과 조를 이뤄 출전한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휠체어테니스 쿼드 복식 결승에서 일본의 모로이시 미쓰테루-스게노 고지 조에 0-2(4-6 3-6)로 졌다.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눈앞에 뒀지만 아쉽게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야구선수 출신 김명제는 국제종합대회 메달의 꿈을 휠체어테니스 선수로 이뤘다.

사실 김명제는 야구계가 주목하는 유망주였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2005년 두산에 1차 지명을 받은 김명제는 당시 6억원이라는 고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 입단 첫해부터 1군으로 활약한 그는 2009년까지 통산 137경기에 등판해 22승 29패 1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4.81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2009년 12월, 그의 나이 23세에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그는 고가도로에서 추락사고로 경추골절상을 입고 12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아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됐다.

운동선수 출신의 그는 혹독한 재활 끝에 휠체어를 타지 않고 다리를 절룩일 정도로 재활에 성공했다. 그러나 야구선수의 꿈은 접어야 했다. 실의에 빠진 그는 체중이 130kg까지 불어날 정도로 자신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2014년 그는 살을 빼고 직장을 얻어 부모님께 월급을 드리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운동을 하다 만난 휠체어펜싱 선수에게 휠체어테니스를 소개받았다. 취미로 시작한 휠체어테니스는 결국 그의 인생을 바꿨다.

모두가 그의 변신을 반긴 것은 아니었다. 절친인 야구선수 최정(SK)이 반대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김명제는 "(최)정이가 반대를 많이 했다. 일상생활을 할 때 휠체어를 안 타는데 경기를 할 때는 타지 않나. 그런 모습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면 사람들이 다리도 아예 못 쓰고, 걷지도 못하는 것처럼 볼까봐 걱정했다"고 전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김명제는 첫 국제종합대회 출전에 메달까지 품에 안았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국제대회를 처음 나왔다. 야구 선수로 못 갔던 아시안게임을 다른 종목으로 오게 돼 영광"이라는 김명제는 "현재 프로야구 선수로 뛰고 있는 친구들이 '메달을 따오라'며 응원해줬다. 메달을 따서 응원에 조금 보답은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휠체어테니스선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김명제는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

"2020년 도쿄 패럴림픽 출전에 도전하겠다. 국제테니스연맹(ITF) 세계랭킹 10위 내에 드는 것도 목표"라고 밝힌 김명제는 "야구에서도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도 그러고 있다. 제2의 인생에서는 가능성만 많은 선수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도록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사고가 난 이후 잠실구장은 가본 적이 없다.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더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나서 두산 팬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시구를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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