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풍요로운 한가위"… 장애와 나이에 맞선 검정고시 합격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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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소통 불가능한 뇌병변3급 최두용씨 '4전5기' 합격담
휠체어·목발 의지한 지체1급 팽민숙씨 '공부벌레' 스토리

지난 21일 경기 화성장애인야간학교에서 만난 최두용씨가 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4전5기의 합격담을 들려준 그는 시험에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여자친구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진=신병근 기자)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올해 추석에 드디어 자랑할게 생겼다고 하네요."

경기도 화성 장애인야간학교에서 만난 최두용(53)씨의 든든한 버팀목인 전미영 평생교육사는 최 씨의 표현을 대신 전달했다.

뇌병변 3급의 장애를 가진 최 씨를 위해 전 교육사는 통역에 나섰다. 3년 가까이 야간학교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이제는 눈빛과 몸짓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최 씨는 뚜렷하진 않아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번 추석이 누구보다 풍요로울 것이라고 전했다.

'합격', '성공'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지난 53년이었지만, 최근 치른 초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최 씨는 "추석에 모일 가족들에게 합격증을 보여 줄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다"고 말했다.

최두용씨가 화성장애인야간학교에서 타악 수업에 참여하며 북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 4전5기의 신화… "여자친구 만나 행복한 가정 꾸리려고"

23일 현재 최 씨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초졸 검정고시를 4차례 떨어지고 다섯 번 만에 합격한 즐거움도 잠시, 최 씨는 야간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2018년도 제2회 초졸·중졸·고졸 검정고시가 지난달 8일 전국 시·도 교육청 주관으로 시행된 가운데 경기지역의 경우 6573명이 응시해 4902명(합격률 74.58%)이 합격증을 받았다.

최 씨처럼 장애를 딛고 시험에 응시한 40명 중 10명도 각각 초졸(3명), 고졸(7명) 시험에 합격했다.

최 씨는 선천적 장애 때문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어도 친구들의 놀림이 계속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집안 농사일을 도왔다.

10여 년 전 아버지와 사별한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최 씨는 지인의 권유로 2016년 야간학교를 찾았고 "공부를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고 했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그에게 한글과 숫자를 깨치는 것은 농사일 보다 몇 배는 어려웠지만 최 씨의 도전정신을 꺾진 못했다.

학교에 오전 9시30분에 나와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듣는 내내 최 씨는 모르는 내용이 있을 경우 이해할 때까지 선생님께 묻고 또 물었다.

교실 맨 앞은 최 씨의 전용 자리였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라고 했다.

학생 대표격인 야학 반장이기도 한 최 씨는 시험에 계속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미래의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밝힌 최 씨.

그는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 때마다 나를 위해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다"며 "모든 수업이 다 재밌지만 그 중에서도 국어가 제일 재밌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글 속의 숨은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4월에 있을 중졸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21일 오산장애인야간학교에서 만난 팽민숙씨가 공부하고 있다. 그는 검정고시 합격 비결에 대해 새벽까지 공부하며 만든 '오답노트'라고 전했다. (사진=신병근 기자)

 


◇ 합격 비결은 '오답노트'… "오롯이 내 걸 만들고 싶었어요"

경기도 오산 소재의 또 다른 야간학교에서 만난 팽민숙(54·여)씨도 올해 맞는 추석을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초졸 검정시험 합격담을 들려줬다.

지체1급의 장애로 휠체어로 이동하고 목발에 의지해야 하지만 팽 씨의 공부에 대한 열의만큼은 선생님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했다.

3살 때 찾아온 소아마비로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신체적 불편함과 어려운 가정 형편은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꿈조차 앗아갔다.

4남 2녀의 막내인 팽 씨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 속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극복해왔다.

그는 "장애는 몸이 좀 불편할 뿐이지, 마음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며 "항상 긍정적이고 젊은 생각을 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 차량을 이용하다보니 경기도 수원의 자택에서 오산 야간학교까지 통학 시간만 2시간이 넘지만 팽 씨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학교를 찾는다고 했다.

남다른 이해력으로 3개월 만에 초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학교에서 '공부벌레'로 불리며 지금은 중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다.

팽 씨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 꺼'라는 걸 갖지 못했는데, 졸업장 하나 없는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며 "폭염 때문에 고생한 지난 여름, 에어컨 없는 집에서 새벽 2시까지 '오답노트'를 만들어 공부한 것이 합격의 비결인 것 같다. 말로 표현 못할 만큼 뿌듯하다"고 밝혔다.

그의 가방 속엔 그동안 틀린 문제와 다시 풀이한 내용이 정리된 오답노트가 가득했다.

27살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올해 추석에 만날 오빠들과 언니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며 가족들에게 보여줄 합격증을 자신 있게 꺼냈다.

팽 씨는 "이젠 딸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 맞춤법을 틀리지 않고 쓸 수 있다"며 "지금까지 살면서 운전면허 말고는 합격증이 없었지만 스스로 노력해 얻은 검정고시 합격증이 이번 추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 내년 4월 중졸 시험에 응시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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