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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는 개보다 잘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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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의 칼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토요일 저녁 무렵.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차창 너머로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노인이 보였다. 80대로 보이는 노인은 정갈한 차림새였지만 표정은 딱딱했고 약간 우울해 보였다. 노인은 오른손으로 개의 목줄을 꼭 쥐고 있었다. 노인 옆에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개는 어린 흰색 말티즈였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 그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노인과 개의 산책 모습이었다.

횡단보도 신호가 먼저 바뀌었다. 노인은 세 발자국 쯤 앞서 가는 개의 목줄을 쥐고 따라갔다. 말티즈는 호기심 많은 명랑한 녀석이었다. 걷다가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주인을 커다란 눈으로 확인하고는 다시 앞서갔다. 노인은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보았던 노인과 개의 산책 장면이 한 동안 잊히지 않았다.

17살 된 요크셔테리어를 기르는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할아버지 잘 주무셨어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사람 나이로 치면 80살쯤 되는 셈이다. 녀석은 들은 채도 않는다. 멀뚱히 거실 창을 바라보고 서 있다. 일 년 전쯤부터 귀가 먹어 듣지를 못한다. 그때 눈도 멀기 시작해 지금은 앞을 보지 못한다. 걷다가 벽면에 콩! 책상 다리에 콩! 거실 창에 콩! 하고 머리를 박는다. 그때마다 방향을 바꾼다. 워낙 기력이 없어 살살 걷기 때문에 부딪힌다고 충격을 받거나 다칠 정도는 아니다. 녀석은 종종 노승처럼 면벽을 한다. 선채로 벽을 향해 5분 때로는 10분 가까이 미동도 않고 서 있다. "할아버지 뭐하세요?"하고 물어도 꿈쩍 않고 그렇게 면벽 수도를 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노령견이지만 녀석은 우리 집의 따뜻한 생명이다. 외출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주인이 온 것도 모른 채 멍청히 앉자있거나 잠들어 있다. 그런데도 안도와 위로를 받는다. 너무 늙어서 사랑받을 줄도 모르는 눈멀고 귀먼 노령견이지만, 주인인 나에게 여전히 평화를 준다.

어제 아침에는 야생곰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다 사망한 2킬로그램짜리 반려견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가정집에 야생곰 한마리가 침입하자 작은 반려견이 달려 나가 싸우다 생명을 잃었다는 내용이다. 개가 곰과 싸우는 사이에 가족들은 피신했고 개는 자기 몸집의 수십 배에 달하는 야생곰과 맞서다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지난달에는 기르는 개가 방 안에까지 들이닥친 멧돼지와 맞붙어 싸우며 주인을 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멧돼지와 싸운 생후 1년이 겨우 지난 개는 몸집이 1미터가 넘는 멧돼지에 물려 중상을 입고 부산시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개는 왜 주인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는 걸까. 주인을 한결같이 좋아하는 걸까. 개가 지닌 유전학적 특성이라고 말하기에는 왠지 부족하다. 때로 '우리 인간은 개보다 잘났을까'라는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사람의 심성이 개보다 못할 때가 많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때로는 상실감과 자기연민에 빠져 꼬리를 흔드는 개를 외면한다. 그런데도 개는 다가와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며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와 함께 동거하는 이유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장관도 대기업 총수도 개를 기른다.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도 김밥을 파는 자영업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급 노동자도 개를 기른다. 모두들 피곤한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꼬리를 흔들며 반겨줄 개를 떠올린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달려오는 개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며 미소를 짓는다. 집 밖의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격동의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건너온 사람들은 개를 보며 시름을 놓는다.

토요일 저녁 차창 너머로 보았던 쓸쓸한 노인에게 어린 말티즈는 천사였다. 아침마다 안부를 물어야 하는 나에게 눈멀고 귀가 먼 할아버지 개 역시 천사와 다름없다. 개들은 사람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사람이 줄 수 없는 것을 준다.

이기적이고 사악하기까지 하며 마음이 병든 사람들 사이에서 시소게임 하듯 살고 있는 개들은 그러고 보면 신이 내린 선물이다. 모두가 동의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개는 불쌍한 인간을 위해 신이 보낸 천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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