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예멘 난민 거부감 속 포용…"공존 가능성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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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멘난민 5개월①] 축구·한글 교육 통해 서로 교류…인도적 지원도 지속

지난 5월 내전을 피해 제주에 들어온 예멘인 549명이 난민 신청을 한 이후 수용여부를 두고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논란 5개월째인 현재 예멘인들의 상황과 관계 당국 대응의 문제점을 6일부터 3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첫번째 순서로 난민 혐오 속에서도 꽃 피우는 연대 움직임을 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제주 예멘 난민 거부감 속 포용…"공존 가능성 봤다"
(계속)


지난달 31일 제주 새마을금고 연수원 축구운동장에서 예멘인이 골을 넣고 도민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현재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여전하지만, 도민들의 도움으로 예멘인들은 문화교류를 하거나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사회에 차츰 녹아들고 있다.

◇ 축구 통해 서로 알아가…"한국인과 어울릴 수 있어 감사"

지난달 31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새마을금고 연수원 운동장에서는 예멘청년들과 도민들이 서로 팀을 나눠 축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문화가 다르고 피부색이 달랐지만, 축구를 하는 이 시간만큼은 함께 땀을 흘리고 골을 넣으면 서로 기뻐하는 등 하나가 된 모습이었다.

제주도민 구모(42)씨가 예멘청년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이날 축구경기에 참여한 구모(42)씨는 CBS노컷뉴스 취재진에게 "처음엔 예멘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축구를 함께하다보니 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하나둘씩 사라졌다"며 "지금은 그냥 동네 청년들처럼 편하다"고 말했다.

축구선수 박지성과 손흥민을 좋아한다는 아흐메드(23)도 "제주에 와서 한국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축구를 통해 한국 사람들과 얘기하고, 가까워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현재 임시숙소에서 묵고 있는 60여명의 20대 예멘청년들은 지난 7월부터 매주 2차례씩 도민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도내 7개 축구팀과 축구 경기를 가졌다.

아흐메드(23)가 축구 중에 쓰러지자 예멘청년들이 부축해주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예멘청년들이 도민들과 축구를 하기까지 성공회 성요한(50) 신부의 힘이 컸다. 그는 우연히 예멘인 임시숙소를 찾았다가 예멘청년들이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안에서만 우두커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축구 교류'를 시작했다.

처음엔 축구공도 없었고 복장도 변변치 않았지만, 함께 뜻을 모은 도민들의 후원으로 지금은 번듯한 유니폼과 축구화도 생겼다.

성요한 신부는 "도민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축구 교류를 시작할 수 없었다"며 "이들이 한국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없었는데 축구를 통해 도민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낯선 한국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저는 예멘사람입니다" 자원봉사자 40여명이 한글 교육

"안녕하세요. 저는 예멘사람 할리드입니다."

취재진이 지난달 30일 서귀포시 중문동의 임시숙소에서 할리드(30)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아랍어가 아닌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직 서툴지만 또렷한 발음이었다.

예멘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할리드는 사우디 연합군과 이란군의 대리전으로 변질한 내전 상황에서 강제징집을 거부하다 허리에 총을 맞았다가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후 지난 5월 아내 하야드(25‧여)와 함께 제주로 왔다.
할리드(30)가 예멘 내전 상황에서 입은 총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지금도 총상 때문에 몸이 불편하지만,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위해 부인과 함께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숙소 한편에는 한국어 공부 책과 함께 한글 공부 흔적이 가득한 연습장이 놓여 있었다.

할리드는 "한국음식이나 사람들 모두 좋다"며 "총상과 함께 당뇨로 몸이 많이 아프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인 하야드도 "원하는 일을 빨리 얻을 수 있도록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할리드·하야드 부부가 한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보고 있는 책. (사진=고상현 기자)

 

현재 할리드‧하야드 부부 등 예멘인들은 제주시 조천‧유수암리, 서귀포시 중문‧모슬포 등 8개 지역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한글 선생님'인 도민 40여명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백가윤 난민인권을위한범도민위원회 교육팀장은 "선생님 대부분 전문 교사가 아니지만, 예멘인들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짬을 내서 봉사해주고 있다"며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예멘인들의 적응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 "우리 아파트에서 나가라"…집단행동에 차별적 시선도

예멘인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이처럼 도민들의 도움으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한국 사회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한 이슬람 혐오 분위기가 그러한 흐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논란 초기에는 마을주민들이 예멘인들을 수용한 도민 가정에 개별적으로 찾아가 항의하는데 그쳤다면 최근 들어서는 주민들이 집단행동으로 예멘인들을 숙소에서 내쫓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말 천주교 제주교구에서 제주시내 한 아파트를 임대해 예멘인 12명을 살게 했지만, 아파트 주민회의 반발로 지난달 말 다른 곳으로 숙소를 옮겨야만 했다.

또 지난달 한 난민 관련 시민단체에서 후원금을 통해 제주시 애월읍 펜션들을 임대해 예멘인 100여명을 수용하려고 하자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등교거부 등 반발해 계획이 철회됐다.

일상에서 차별의 시선도 있다. 서귀포시 중문동 임시숙소에서 묵고 있는 무함마드(25)는 "버스를 타면 한국 사람들이 옆에 앉지도 않는 등 배척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같은 곳에 사는 하디프(21)도 "낮에 돌아다니면 째려보거나 무서워하는 게 느껴져서 낮에는 되도록 밖에 안 나간다"고 토로했다.

현재 예멘 난민 신청자들 대부분이 이들처럼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며 되도록 임시숙소에만 머물고 있다.

제주 예멘 난민이 범죄에 연루됐다는 SNS 글들.

 

특히 제주지역에서 실종 등 범죄 의심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예멘 난민 신청자가 연루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상에 나돌면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강력사건으로 입건된 적은 없다.

◇ 혐오 속 꾸준한 연대…"난민 공존 해법 제주서 찾을 수 있을 것"

예멘 난민 신청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여전하지만, 그 속에서도 묵묵히 예멘인들을 도와주는 도민들 덕분에 현재 난민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예멘인들은 큰 혼란 없이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 6월 비영리시민단체인 글로벌이너피스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사 앞마당에서 예멘 난민들에게 후원 물품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실제로 예멘 난민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5월만 해도 돈이 떨어진 일부 예멘인들이 노숙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현재에는 그러한 예멘인은 없다. 도민들의 후원으로 이들 모두 안정적으로 숙식을 제공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인 난민인권을위한범도민위원회 위원장은 현 제주 예멘 난민 상황에 대해 "여전히 한쪽에서는 예멘인들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를 극복해나가는 도민들의 끊임없는 노력들 때문에 균형이 잡혀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난민들과 국민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모델들이 제주도에서는 미약하지만 형성되고 있다"며 "향후 한국 사회의 난민 정착과 관련한 공존 모델을 만들 때 제주에서 이뤄지고 있는 연대의 방식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한 도민의 배려로 개인연습실에서 머물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지난 8월 예멘인들과 도민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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