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스포츠레터]12년 전 국민들은 '병역 혜택'을 먼저 청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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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감동이었어' 한국 야구는 2006년 제 1회 WBC에서 미국과 일본을 연파하며 4강 신화를 일궜고, 당시 국민들은 군 미필 선수들에 대한 병역 혜택을 청원하면서 11명의 선수들이 군 면제를 받았다. 사진은 당시 일본을 꺾고 4강행을 이룬 선수들이 기뻐하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오지환(28·LG)의 금메달에 따른 병역 혜택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오지환은 지난 6월 대표팀 승선부터 논란이 일었고, 대회 기간에는 미미한 기여도(몰론 이는 장염에 따른 컨디션 난조 때문이었습니다)로 여론이 더 나빠졌으며,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낸 이후에도 비난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오지환의 병역 혜택 취소를 청원하는 글까지 올라왔습니다. 여기에 '야구 선수들의 병역 기피의 통로인 아시안게임 무임승차 방지를 위한 오지환법 제정을 촉구합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여론이 나빠진 것일까요? '국민 스포츠'라고 불리는 한국 야구인데 말입니다.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응당 기뻐해야 할 팬들인데 오히려 싸늘하게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는 무엇 때문일까요?

아시안게임 기간 야구 대표팀에 대한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일단 오지환과 박해민(28·삼성) 등에 대한 병역 기피 논란이 커진 데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프로 최고 선수가 총출동한 대표팀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습니다. 야구 저변이 넓지 않은 아시아에서 우리와 금메달을 다툴 팀으로 일본과 대만이 꼽히지만 이들도 실업 선수가 주축을 이룬 까닭입니다. 아시안게임이 야구 선수들의 병역 기피의 통로라는 지적이 나온 이유입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홍콩, 파키스탄 등 약체들은 이번 대회에서 콜드게임패를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야구 강국들이 상대적으로 워낙 전력이 셌기 때문입니다. 야구 3강 중에서도 한국은 한 선수의 몸값이 대만 선수단 전체보다 높을 정도로 한 수 위의 전력이었습니다. 어쩌면 한국 야구에서 '아시안게임=금메달'이라는 공식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금메달 없는 금의환향'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며 대회 3연패를 달성한 야구 대표팀이 3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해 기념촬영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런 아시안게임의 성격이 오지환 사태를 부른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력 비교가 불가한 약체들, 혹은 한 수 아래의 팀들만 나오는 대회에 한국 야구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걸까. 때문에 군 미필 선수들이 손쉽게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실제로 오지환과 박해민이라는 사례가 두드러지면서 국민들의 역린을 건드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둘은 상무나 경찰 야구단 등 선수와 군 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잡지 못했습니다.(않았습니다가 더 맞다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두 선수가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을 염두에 두고 올해 승부를 걸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현 제도에서 두 선수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불법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한국의 우승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는 아시안게임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생깁니다. 더욱이 두 선수의 기량과 존재감이 대표팀 주전이 아니기에 더 그렇습니다. 대체 불가라면 모를까 후보라면 다른 선수들도 있는데 굳이 병역 혜택에 목숨을 거는 모양새가 된 두 선수를 뽑는 게 맞느냐는 겁니다.

그나마 박해민은 리그 최고의 중견수 수비와 도루 능력으로 대수비, 대주자의 쓰임새가 있지만 오지환은 내야수로서 멀티 능력이 없어 논란이 더 커졌습니다.(이는 NC의 25살 2루수 박민우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워낙 오지환, 박해민 논란이 커서 묻힌 듯도 합니다.)

8월 24일(현지시간)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라와망운 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남자 야구대표팀 공식훈련에서 오지환이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시간을 12년 전으로 돌려볼까요? 당시 한국 야구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는 지금과는 완전히 정반대였습니다. 국민들이 먼저 야구 대표팀의 군 미필 선수들에 대해 병역 면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뤘습니다. 바로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를 이룬 때였습니다.

당시 WBC는 메이저리그(MLB)가 주도해 축구의 월드컵처럼 최고의 야구 국가대항전을 만들자는 취지로 개최됐습니다.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MLB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대회였습니다. 미국과 일본,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등 야구 강국들이 출전해 자웅을 겨뤘습니다.

한국 역시 당시 MLB에서 뛰던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최희섭 등과 일본에서 활약하던 이승엽 등 해외파들을 소집했습니다. 이종범, 구대성, 오승환, 김태균 등 KBO 리그 스타들까지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습니다. 야구 역사상 최초의 각 나라 프로 스타들이 운집한 대회였습니다.

국내에서도 WBC는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미 박찬호, 김병현 등이 MLB를 주름잡았지만 과연 한국 야구가 세계 강호들과 겨뤄 어떤 성적을 낼지에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숙적 일본은 물론 미국과 멕시코 등 MLB 선수들이 즐비한 강호들을 연파하며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종범의 통렬한 싹쓸이 2루타로 일본을 꺾고 4강행을 이룬 선수들은 야구 종주국 미국 에인절스타디움에 태극기를 꽂았습니다.

전 국민들이 열광했습니다. 한 뉴스 전문 채널은 창사 이래 WBC 보도가 최고의 시청률을 찍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두 차례나 이겼던 일본을 4강전에서 또 만나는 이상한 대회 일정으로 결승행은 무산됐지만 이승엽이 미국의 신성 돈트렐 윌리스를 홈런으로 두들기며 WBC 홈런왕에 오르는 등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인 대회였습니다.

때문에 국민들은 대표팀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을 이룬 박지성, 이영표 등 축구 대표팀처럼 WBC 4강 신화를 달성한 야구 대표팀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봇물을 이뤘습니다. 만약 당시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이 있었다면 당연히 엄청난 호응이 있었을 겁니다. 최희섭, 김선우, 오승환 등 11명이 병역 혜택을 받았습니다.

'정후야, 아빠 원래 이랬어' 2006년 WBC에서 이종범(왼쪽)이 일본과 2라운드 8회 2타점 적시타를 때린 뒤 바람처럼 내달리는 모습과 이 경기 승리로 4강을 확정지은 뒤 서재응이 태극기를 에인절스타디움 마운드에 꽂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오히려 국민들이 야구 대표팀 선수들(일부이긴 하지만)의 병역 혜택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당시 WBC는 군 면제가 걸린 대회가 아니었지만 아시안게임은 엄연히 병역법에 따라 혜택이 주어지는 대회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극명한 대조는 대회가 주는 감동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WBC에서 한국 야구는 세계 최고의 무대 MLB 선수들이 주축이 된 미국은 물론 일본 야구의 심장이라는 스즈키 이치로의 높은 콧대까지 보기좋게 꺾는 등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전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친 겁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은 완전히 다릅니다. 감동이 전혀 없습니다. 무조건 우승이 결정돼 있는 대회인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병역 혜택을 바라고 입대 시기까지 미뤘던 선수들이 무임 승차를 하는 것처럼 온갖 논란에도 대표팀에 승선하는 모습. 이게 국민들의 반감을 일으킨 겁니다.

상황도 12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야구 대표팀은 3월 WBC 4강 신화를 이뤘지만 11월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치욕적인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해외파는 없었지만 역시 프로 최고 선수들이 모였는데도 실업 선수들이 나온 일본, 한 수 아래라던 대만에 연패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해외파 추신수에 KBO 최고 선수들까지 모였지만 병역 혜택 논란이 상대적으로 적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4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때 병역 혜택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대회 전부터 10개 구단에서 미리 미필 선수들을 배정해 대표팀을 꾸렸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무려 13명이 골고루 혜택을 받았습니다. 특히 오지환, 박해민처럼 군 입대 나이가 꽉 찼던 모 선수는 대회 우승 직후 "부상이 있었지만 악물고 버텼다"고 털어놓으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금메달이다' 나지완(가운데) 등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대만과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그래도 당시는 KBO 리그의 경기력과 인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있었습니다. KBO 리그는 2013년 NC의 1군 가세와 kt의 창단 등 선수 수급에 비상이 걸린 때였습니다. 가뜩이나 저변이 부족해 선수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각 구단 주축인 미필 선수들이 군 입대를 하면 리그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었습니다. 미필 선수들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발탁에 구단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정권이 바뀌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국정농단의 중심 최순실의 딸 정유라로 대표되는 특혜에 대해 국민들의 정서는 엄격해졌습니다. 이른바 을에 대한 갑질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야구도 마찬가집니다. 국민들에게 수억 원, 아니 수십억 원의 몸값을 받는 야구 선수들은 을이 아닙니다. 어린 나이에 국민들의 평균 연봉을 훌쩍 넘는 보수를 받는 선수들. 물론 피나는 훈련에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에 국민들은 열광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을 병역 혜택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듯한 행보에는 여지 없이 철퇴를 가하는 요즘 국민들입니다. 더욱이 음주 운전과 승부 조작 등 불법을 저지르는 일부 선수들 때문에 더 날카롭게 선수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에 대해 재검토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과연 해당 국제대회에서 우리 야구 대표팀이 국민들에게 뿌듯한 감동을 안길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아시안게임과 우리 대표팀의 전력을 감안하면 절대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습니다.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고 기꺼이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겁니다.

12년 전 야구 대표팀에 대해 먼저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고 들불처럼 일어났던 대한민국 국민들. 그러나 2018년 현재는 그 혜택을 취소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KBO와 야구계, 선동열 감독까지 향후 국제대회에 대한 대표 선발 기준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쿠바에 3-2 승리를 거두며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낸 야구대표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달려나와 서로 부둥켜 안고 감격을 나누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p.s-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경문 감독은 "올림픽 이후 야구를 잘 모르는 여성 분들도 알아보더라"는 후일담을 가끔 하곤 합니다. 은행을 가도 전에는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올림픽 이후에는 스포츠 문외한인 중년 여성들도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한다는 겁니다.

당시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는 프로 정예가 출전한 숙적 일본과 종주국 미국, 아마추어 최강이라는 쿠바를 연파하고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썼습니다. 특히 일본은 2000년 시드니 대회 때와 달리 베이징 때는 이승엽의 요미우리 동료였던 아베 신노스케 등 최강의 전력을 끌어모아 9전 전승 우승을 공약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호시노 센이치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습니다.) 그런 일본을 두 차례나 통쾌하게 꺾으며 금메달까지 따낸 겁니다.

2006년 WBC 못지 않게 전 국민들이 열광했습니다. 그런 감동을 안겼기에 야구를 잘 모르는 여성 분들도 김 감독을 알아보고 사인 요청을 한 겁니다. 열세 혹은 접전으로 예상됐던 대회와 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때 비로소 국민들은 감동을 받는 겁니다.

WBC 대표팀 사령탑이던 김인식 전 감독은 어떨까요? 2009년 WBC까지 준우승을 이끌며 '국민 감독' 칭송을 받았습니다. 2015년 프리미어12 역시 열세를 딛고 우승을 견인한 김 감독입니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06년과 2009년 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한국 야구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들은 최고의 스타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지환, 박해민 등 논란의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들은 대회 이후 흔쾌히 팬들의 사인 요청을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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