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그러면 연락사무소 보일러를 뜯어오라는 얘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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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 개보수 공사 중인 가운데 설비인력이 기계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최근 몇몇 신문에는 정부가 지난 6월과 7월 두 달에 걸쳐 철강과 알루미늄, 구리, 니켈 등 10억 원어치 상당의 금지 품목을 북한으로 반출했다는 기사가 일제히 실렸습니다.

개성에 설치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로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 2397호에 규정된 제재 품목들이 116.4t이나 들어갔고, 국내에 다시 반입된 것은 7.7t에 불과해 북한에 108.8t이나 남아 있는 내용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철강과 철강의 제품이 5만8천여t, 구리와 그 제품이 0.9t, 알루미늄과 그 제품이 0.1t, 원자로·보일러·기계류 22.6t 등입니다.

이는 모두 보수 야당 소속 한 국회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근거한 뉴스였습니다. 정부가 북한 반입이 금지된 품목들을 대거 퍼다 준 것으로 해석되기 딱 좋은 내용으로 꼬아서 보도됐습니다.

실제로 해당 기사에는 “우리 몰래 북한에 퍼준 게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특검을 해야 된다”며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심지어 “유엔은 대한민국을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효하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문제의 품목들은 개성에 설치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보수하는데 필요한 자재와 공구들이었습니다.

정부는 연락사무소를 따로 신축하지 않고 개성 공단 내에 있던 남북교류협의사무소를 고쳐 쓰기로 했습니다.

철강류 HS 코드 분류 (캡처=관세청 홈페이지)
지난 6월 현장을 점검한 결과 지하층은 침수되고 벽면 누수와 유리 파손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일단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빼고 기초 설비 등을 점검한 뒤 지난달 2일부터 본격적인 개보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때 반입된 양수기와 낡아서 교체한 보일러, 각종 검사측정 장비가 ‘원자로·보일러·기계류’ 반출에 포함됐습니다. 철강류는 연락사무소 정문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반입된 H빔과 볼트·너트류, 스패너 등 철제 공구였습니다.

구리류는 보일러 배관 등에 사용되는 동관과 전선 등이었고, 니켈류는 각종 케이블을 연결하는 사용되는 결속자재와 문에 달린 손잡이와 경첩 등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금속 부분품은 석고보드와 타일, 합판 등 마감재였고, 시멘트와 페인트, 사다리, 장갑, 보호대 등입니다. 모두 남북연락사무소 개보수용으로 반출된 것들입니다.

이때 북한 지역으로 물품을 반출할 때는 반드시 수출신고서를 작성해 관세당국에 제출해야 합니다. 품명과 규격, 성분, 단가와 중량 등을 기록해야 하는데 ‘국제통일상품분류’인 HS 코드 10자리(세번부호)도 함께 적습니다.

예를들어 ‘철강의 제품’의 HS 코드 분류에서 제 73류(類)에 속하는데, 철강으로 만든 볼트의 HS 코드는 7318-15-2000이고 너트는 7318-16-0000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자료의 경우 대분류만 해놓고 세부 품목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는 바람에 사소한 부품이나 소모품까지 마치 전략물자인 것처럼 뭉뚱그려졌습니다.

통일부는 “연락사무소에 대한 모든 물자와 장비, 전력공급은 사무소 운영과 우리 인원들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다 대북 제재 위반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금지된 물자를 북한에 갖다 준 것처럼 오도하는 것은 ‘보일러나 문짝을 다 뜯어오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 철제빔을 재단하고 버린 자투리 금속이나 소모성 부품들을 다 주워 와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논리로 귀결됩니다.

관세청 수출신고서 양식 일부
해당 의원실은 "여러차례 질의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문제의 품목들이 볼트나 너트 등이라고 설명한 적이 없다"며 "국민들 입장에서는 발전기나 철강이 반입되는데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제재 위반 논란이 제기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취지부터 우선 따져봐야 될 것입니다. 대북 제재의 목적은 북한의 궤멸이 아니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함께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오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24시간 365일 북한과 소통하면서 비핵화에 더 속도를 내도록 대화하고 설득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여기에 상주하는 우리측 인원들이 보일러를 틀고 전기를 쓰는 걸 두고 제재 위반이라고 침소봉대하는 게 한반도 평화에 어떤 도움이 될지 차분하게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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