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의정사에 남을 쾌거'는 빈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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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국회에서 국회의장 주재 원내대표 회동을 갖고 있다. 이날 여야는 연 60억원 규모의 국회 특수활동비를 완전히 폐지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진=윤창원 기자)

 


20대 후반기 국회가 시작부터 큰 곤혹을 겪고 있다.

바로 특수활동비 문제 때문이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국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주례회동에서 "여야 간에 특활비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이에 대해 "의정사에 남을 쾌거의 결단을 내렸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몇 시간도 안돼 반의 반쪽 짜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주례회동 후 별도공지를 통해 "특활비 폐지는 교섭단체 특활비 폐지고 의장단과 상임위에서 사용하는 특활비는 의장이 논의를 주도해 16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올해 국회 특활비 예산은 모두 62억원이다.

이 가운데 교섭단체 몫은 15억원이고 나머지는 의장단과 상임위 몫이다.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만나 완전 폐지하기로 한 특활비는 결국 국회 전체 특활비의 24%로 반의 반쪽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국회는 나머지 특활비에 대해서는 완전 폐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회 의장실 관계자는 "의장단은 기밀을 요하는 비용이 있고 상임위는 업무추진비가 많지 않다"며 "의장단과 상임위에 돌아가는 특활비는 절반 이상으로 줄이고 영수증을 첨부해서 투명하게 사용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결국 특활비 전면 폐지가 아닌 축소가 "의정사에 남을 쾌거"가 됐다.

당장 주례회동 당사자인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부터 강력반발하고 나섰다.

"회동 당시 의장단과 상임위 특활비를 존치하겠다는 얘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국민 앞에 대단히 부끄러운 상황이 돼버렸다"며 "국민과 함께 특활비가 전면 폐지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이 특활비를 반납하면서까지 특활비 전면 폐지운동의 선봉에 섰던 정의당도 특활비 반쪽 폐지를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윤소하 원내대표 직무대행은 "국회 특활비가 비판받는 것은 그 사용처를 모르는 국민 세금이 쌈짓돈처럼 집행됐기 때문"이라며 "의장단과 상임위 특활비 역시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완전 폐지하기로 했다가 축소하는 것으로 말을 바꾼 형국이지만 국회는 처음부터 특활비 전면 폐지에는 뜻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앞서 지난 8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특활비 투명, 양성화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올해 당장 영수증 없이 사용하는 특활비는 폐지하고 내년부터는 특활비를 업무추진비와 특수목적 경비 등으로 전환해서 양성화하겠다는 안이다.

하지만 다른 소수야당과 시민단체의 비판여론에 밀려 완전폐지로 갔다가 다시 축소하기로 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활비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이 국정원으로부터 상납받아 사사로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됐다.

그에 대한 국민의 공분도 크게 일었다.

특활비는 정보나 사건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을 하는데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경비다.

특활비는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아도 되고 결산처리를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알 수 없다.

국정원처럼 안보에 직결되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면 모를까 국회에 특활비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실제로 특활비는 '검은 예산', '눈먼 돈'으로 국회의원 개인에게 연봉 외에 부수입으로 용돈처럼 사용돼온 것이 사실이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특활비를 집에 가져다 주었다고 당당하게 밝히기도 했다.

이런 특활비를 폐지하기로 했다가 다시 축소로 돌아서는 것은 국회에 대한 실망을 더 크게 할 뿐이다.

아직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은 근절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국회 특활비가 중요한 것은 국회의 잣대가 특활비를 사용하는 다른 정부 부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 19개 기관의 전체 특활비 규모는 1조 3천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국정수행활동과는 관계없고 국회처럼 '검은 예산', '눈먼 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회가 특활비와 관련해 한 점 의혹없이 깨끗해야 다른 부처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할 수 있다.

그래야 정말 '의정사에 남을 쾌거'가 된다.

16일 문 의장의 특활비 제도개선 방안 발표가 그런 쾌거의 계기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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