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소득주도성장, 보이지 않는 혁신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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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정규직화·종부세 등 전면 후퇴 '우클릭'
정권 내 보수인물의 소득주도성장 힘빼기 해결해야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으로 꼽힌 '소득주도성장'이 힘을 잃고 있다. '혁신성장'은 창조경제 재탕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 경제관료와 정권 내 보수인사들의 소득주도성장을 조기 폐기하려는 움직임 탓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경제 발목 잡는다? 발목 잡힌 소득주도성장이 문제!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경제지표는 상승세를 탔다. 박근혜 정권 시절 2014년 단 한 번 3.3%를 기록했을 뿐 임기 4년 내내 2%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경제성장률도 정권교체를 마친 지난해에는 3.1%로 3%대를 회복했다.

하지만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현재 한국 경제에 대해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고, 고용이나 소득분배 부진도 단기간 내에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모두 2%대로 하향조정했다.

이러한 변화에 보수언론·야당은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이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아 고용과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군의 진보 성향 지식인들은 정 반대의 진단을 내놓았다. 진보 지식인 323명이 모인 '지식인 선언 네트워크'는 지난 18일 "문재인 정부가 최근 사회경제 개혁을 포기하고 과거 회귀적인 행보를 보인다"고 우려했다.

선언에 참여한 가톨릭대 전강수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최근 경제정책 기조는 문제가 있고, 문재인 정부 성격에도 맞지 않다"며 "소득주도성장을 제대로 못해서 공격 받았는데, 잘 해보려 하기는커녕 아예 이를 버리고 혁신성장을 선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저임금·비정규직 정규직화·종부세 전면후퇴…車砲 뗀 소득주도성장

대표적 사례가 소득주도성장의 주춧돌로 불리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폐기다. 내년 최저임금이 10.9% 올라 2년 연속 두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지만, 올해 초 산입범위가 확대된 탓에 실질인상률은 턱없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올해 최저임금인 7530원 이하인 242만 8천명 노동자 중 88%는 내년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도 6.6% 임금 상승 효과가 있다"며 산입범위 변경 효과를 감안한 실질인상률도 충분히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최저임금 평균인상률은 7.4%에 달한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이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에도 최저임금은 평균 6.9%씩 올랐다.

홍 원내대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보수정권 시절보다도 더 낮은 인상효과를 거뒀다고 공언한 셈이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은 자회사 논란에 휩싸인 채 민간부문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직접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선포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비롯해 한국공항공사, 한국조폐공사 등 굵직한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용역업체를 자회사로 대체하는 방식을 선택하자 노동계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제정책의 '우클릭'은 노동소득 이슈 뿐만이 아니다. 지난 3일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종부세 강화안을 내놓았지만, 불과 사흘 만에 기재부는 일반 국민들이 가진 주택분에는 권고안보다 세율을 더 올리는 대신 주로 기업이 보유한 별도합산토지는 건드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소득주도성장의 굵직한 정책들이 축소되거나 사실상 폐기되자, 그 빈 자리에 새로운 경제동력으로 혁신성장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혁신성장의 뚜렷한 목표도, 성과도 보이지 않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무엇이 다르냐는 우려가 나온다.

혁신성장의 첫 작업은 지난달 기재부가 대한상공회의소와 경총, 전경련 등 재계를 중심으로 애로사항을 수렴하기 시작한 '규제혁신'이다.

'규제 전봇대(이명박 정부)', '손톱 밑 가시(박근혜 정부)'를 뽑아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낙수효과를 노리겠다던 보수 정부가 내세운 단골 메뉴가 재등장한 셈이다.

 

◇정권 안에서 시작된 소득주도성장 힘빼기…청사진 다시 짜야

이러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보수 회귀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보수적인 경제 관료와 정부 내 일부 보수인사들이 소득주도성장 힘빼기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가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은 김동연 부총리의 발언이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지난 17일, 관련 사전브리핑을 마친 기재부 도규상 경제정책국장에게 "최저임금이 고용 위축을 불렀다는 김 부총리 발언의 근거를 밝혀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앞서 김 부총리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불과 이틀 전인 지난 12일 "최저임금 인상이 일부 업종과 청년·노년층 고용 부진에 영향을 줬다"고 단언했고, 일부 최저임금위원들은 이를 간접적으로 거론하며 "특정 의견을 압박하는 발언"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 국장은 "3월~6월 고용 관련 통계자료 등을 보고 부총리가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렇다고 내부보고서를 공개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실증적 통계결과는 김 부총리의 주장과 정반대 결과를 내놓고 있다. 지난 5월 한국노동연구원은 '문재인 정부 1주년 고용노동정책 토론회'에서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영향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7일에도 더불어민주당 소득주도성장팀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부경대학교 황선웅 교수는 지난달까지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 산업 수준에서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률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쳤다는 실증적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고용이 일부 감소된 것은 맞지만, 인구구조 변화나 경기적 요인 등 다른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며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확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고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에는 "지난 1월까지 30만명씩 증가하던 취업자 수가 10만명 대로 줄어든 원인이 오로지 최저임금이라는 주장이야말로 말이 안된다"며 "수요-공급 원리는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할 때의 얘기일 뿐, 경제학부 전공자만 되도 말이 안되는 얘기임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강원대학교 이병천 명예교수 역시 "김 부총리의 발언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며 "학술적·실증적 연구는 지지하지 않는 근거가 희박한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최저임금 공방으로 좁혔고, 그 함정 속에 갇힌 채 논의하니 실패했다"며 "굳건하게 개혁 취지를 끌고 갔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공회대학교 유철규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정통 경제관료를 중심으로 경제라인을 짰다"며 "규제완화, 기업친화적 환경조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기업에 헌실해서 혁신을 이끌 수 있도록 삶의 안정적 조건을 보장해야 하고, 이것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연결고리"라며 "소득주도성장에서 차, 포를 떼 놓으면 과거 정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 교수도 "애초 최저임금이 주 전선(戰線)이 아니라 재벌·대기업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했다"며 "'정책세트' 만들기에 실패한 셈으로, 소득주도성장의 청사진을 짜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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