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재벌개혁, 언제까지 해묵은 경기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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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왜 필요하냐고? 한진과 금호를 보라!

(그래픽=노컷뉴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5월, 식사자리에서 만난 한 재계 인사가 대뜸 금호아시아나그룹 걱정을 쏟아냈다.

요약하자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본사 사옥까지 매각하며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으니 경쟁사인 대한항공이 총수일가의 갑질로 위기를 겪고 있는 틈에 좀 선전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채 두달도 안돼 이 인사의 바람은 말그대로 바람으로 끝났다. 대한항공 고객들은 총수일가의 갑질로 기분이 찜찜할 뿐이지만 아시아나항공 고객들은 장거리 이동중에 배를 곯게 생겼으니 고객서비스를 최고의 가치로 꼽는 항공사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더 큰 치명타다.

◇재벌총수의 잘못된 판단이 그룹 전체 위기로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공급 문제가 근본적으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 그리고 이를 촉발시킨 무리한 기업 인수합병에 있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00년 중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따라 인수하며 재계 8위까지 덩치를 키웠지만 무리한 인수합병 탓에 그룹 전체가 위기를 겪었고 결국 두 회사는 물론 핵심계열사였던 금호타이어까지 매각하는 악수를 뒀다.

이번 기내식 공급 문제도 이런 유동성 위기 과정에서 기존 기내식 공급 업체에 투자를 요구했다가 불발되자 공급 업체를 무리하게 바꾸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기내식 공급 차질로 지탄을 받고 있는 당일 또 다시 국민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만드는 뉴스가 나왔다. 경영참여 경험이 전혀 없는 가정주부로 알려진 박삼구 회장의 딸 세진 씨가 금호리조트 상무로 선임됐다는 소식이다.

재벌총수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경영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자녀를 고위 임원으로 선임하며 그야말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총수일가의 왕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꼴이다.

◇규제도 유리하게 만드는 재벌의 탁월한 능력


창업주 2세는 물론 3,4세까지 이어지는 한국 재벌그룹의 족벌경영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 개선하라는 사회·경제적 요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재벌개혁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아직 단 한번도 들아본 적이 없다. 굳이 박근혜정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역대 정부가 수두룩하지만, 결국 임기 말기에는 재벌들에 둘러싸인 친재벌 정부로 거듭나게 된다.

설사 재벌개혁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더라도 한국의 재벌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발휘해 이를 자신들을 위한 제도로 만들어버린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주회사 체제다. 계열사간 물고 물리는 복잡하고 불투명한 연결고리를 이용하는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지자, 재벌들은 선진적 지배구조라는 평가를 받는 지주회사 체제로 빠르게 전환하거나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일 발표된 공정거래위원회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듯이 총수일가가 지배하는 지주회사들은 자회사를 통해 손자회사나 증손회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적은 지분으로도 지배력을 극대화했다.

또 내부거래를 통해 부족한 수익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총수일가의 배를 채웠다. 투명한 지배구조와 경영활동이 장점이라는 지주회사 체제를 철저하게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사익편취의 도구로 사용하는 능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한국경제 좀먹는 지긋지긋한 악순환 이제 끊어야

통상 정상적인 과세체제 하에서라면 창업주 이후 3세 정도까지 가면 증여세 등 세금납부로 인해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낮아지며 그룹 전체 지배력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3세는 물론 4세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총수일가의 경영권이 세습돼 온 상황을 우리 국민들은 수없이 봐왔다.

'장자 승계'라는 왕조시대에나 볼 수 있는 경영권 세습이 이뤄지고 있지만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전환한 덕분에 아무런 잡음 없이 경영권이 승계됐다며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이런 상황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없는 잡음도 만들어야 할 언론이 그 칭송대열의 선봉에 서있다.


최근 미.중간 무역전쟁으로 한국의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지고 한국 경제를 홀로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는 등 대외적인 악재가 겹치면서 재계와 친기업 언론을 중심으로 현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대외경제 여건이 어려운데 재벌개혁을 앞세워 기업들을 옥죄면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돌고 돌아 우리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돌아보면 재계나 언론은 단 한번도 우리 경제가 호황이라고 자신있게 말한 때가 없었다. 실제 호황이었더라도 "전 세계적 호황인데 우리만 소외됐다", 또는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논리로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인 재벌을 보호해왔다.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이제는 이런 지긋지긋한 악순환을 끊을 때가 왔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난 정경유착, 대한항공 갑질 사태가 보여준 총수일가의 전횡 등 재벌개혁이 필요한 근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특히 총수일가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재벌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오랜 경험을 통해 입증됐다.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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