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홍대 몰카 사건' 국민청원에 34만여 명이 지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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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검의 수사과정을 지켜본 여성들이 분노한 ‘불평등’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홍대 누드 크로키 모델 불법촬영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 시민들은 여성이 아닌 남성의 나체를 몰래 찍어 유포한 것에 대해 호기심을 보였다. 통상적으로 몰카 범죄의 십중팔구는 남성이 여성의 나체를 촬영해 유포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홍대 몰카 사건은 이 같은 인식을 깨트린 경우였다.

미풍에 그칠 것 같았던 이 사건이 '성 평등' 대결로 번지며 산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몰카를 찍은 가해 여성이 경찰의 신속한 수사로 체포됐고, 법원은 즉각 구속영장을 발부했는가 하면, 구속되기 전에는 마치 살인을 저지른 중범죄자처럼 포토라인에 세워 TV를 통해 온 국민이 지켜보게 하면서부터였다.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사흘째인 15일 오후 34만여 명이 동의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경찰의 조치가 다르다는 청원 내용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원 글은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수사를 달리하는 국가에서는 남성 역시 안전하지 않다"면서 "누구나 범죄를 저질렀다면 벌을 받고, 누구나 피해자가 되었다면 국가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운영위원장은 "183명의 여성에게 몰카를 찍은 의학전문대학원생은 기소유예를 받았고, 지난해 현직판사는 몰카 범죄를 저지르고도 약식 기소됐다"면서 "이번 홍대 몰카 사건의 여성 가해자는 왜 그들과 다른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몰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부패 정치가나 기업인, 살인범처럼 포토라인에 섰던 적이 없었다"면서 과도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여성들의 분노에 대해 경찰은 "모든 수사는 신속하게 한다"면서 편파수사 논란을 일축했다. 수사 장소가 미대 교실인데다 수사 대상이 수업 참여자로 특정돼 있어 신속하게 수사가 진행된 것이지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이나 불공정은 없었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수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이 피해자가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라며 여성들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이었고 사진이 찍힌 시간과 장소, 그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신원이 쉽게 파악됐기 때문에 수사가 빠르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성들의 '과한 피해의식'이 문제라며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미경 한국성폭력학교 상담소장은 "여성들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항상 문이나 천장을 살피는 등 생활 속에서 몰카 피해를 우려하고 살아가지만, 국가는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 국민청원과 여성들의 공감에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홍대 몰카 사건에 여성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불평등'이라는 오래됐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는 세상을 향한 분노다. 아직도 건재한 우리 사회 남성중심주의 사고가 남성들의 무의식 속에 여성을 존재가 아닌 소유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나를 자신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채워야 할 빈 그릇으로 본다"면서 "이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매일같이 치르는 전쟁으로, 자신이 잉여라는 생각과의 전쟁이자 침묵하라는 종용과의 전쟁이다."라고 말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 평등'을 위한 전쟁은 어쩌면 요원한 것인지 모른다. 홍대 몰카 사건으로 청와대 국민청원과 SNS와 미디어를 통해 전개 중인 성 평등 논란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래도 여성들은 성 평등을 위한 전쟁을 멈추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성들로부터 '과한 피해의식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비난을 받을지라도 휴전을 하자며 먼저 손 내밀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성 평등을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사는 동안 줄곧 울어야 하는 새의 운명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평등을 노래하기 원한다는 것을 남성들은 잘 모른다. 여성들이 홍대 몰카 사건의 불평등에 분노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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