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남 탓만 한 공범들 - '포항지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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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침묵하고 있을 때 '의심'을 제기하고 자료를 수집해 알린 사람들

지난해 11월 발생한 규모 5.4 강진으로 한 건물 외벽이 무너졌다. (사진=자료사진)

 

포항지진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치단체와 시민단체, 미디어까지도 침묵하고 있을 때 의심을 제기하고 자료를 수집해 알린 사람들이 있다.

그 가운데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지진 발생 원인에 대해 의심을 갖고 관련 자료를 찾아냈던 사람이 양만재 박사다. 영국 더럼대학교에서 사회정책학박사 학위를 받고 고향에 자리 잡은 그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5일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자 그는 세계 각국의 지열발전소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유발지진 사례를 수집해 SNS를 통해 알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유사 사례들이 속속 드러났다. 포항지열발전소가 지하 암반에 물을 투입한 후 지진이 발생했다는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도 뒷받침됐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보다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부 기득권층은 지진 트라우마에 신경이 예민해진 시민들을 자극한다며 문제제기를 중단할 것을 암암리에 요구했다. 일부 보수층은 확인도 안 된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시민을 선동하는 것이라며 그를 비난했다.

그는 비난과 압력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의 한 방송사가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한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심층 보도를 하고,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부 일간지가 가세한 것은 그의 주장이 지속된 후의 일이었다.

정작 지역 시민단체와 자치단체, 시의회, 언론은 조용했다. 산자부와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진 발생 원인을 놓고 지질전문가들이 포럼을 열었지만 지열발전소를 옹호하는 입장에 묻혀버렸다. 그 이유는 뭘까. 원인에 대한 비판적 접근도 하지 않고, 진실을 알기 위한 노력도 취하지 않은 그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지진 발생 후 여진은 계속됐고 그때마다 시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시민들은 멀리서 굉음이 다가오며 땅이 요동치는 것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두려움을 모른다며 계속된 여진의 불안을 전했다. 불안장애 때문에 병원을 찾는 시민이 줄을 이었다. 일부 주민들은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아예 살던 집을 떠나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진앙지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인구는 800명이나 감소했다.

봄이 오고 여진 횟수가 줄었다 그렇게 서서히 포항 지진도 잊혀지는 줄 알았는데 의문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지난달 27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등 국내 연구진과 유럽 연구진의 논문이 동시에 수록됐다.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 가동에 따른 유발지진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였다. 지열발전을 위해 지하 4km의 암반층에 물을 투입한 것이 이 지역 특성상 지반의 균형을 깨트리고 강도 5.4 규모의 지진과 여진을 일으켰다는 것이 논문의 핵심 내용이다.

지열발전소 전경(포항CBS자료사진)

 

그가 지진 발생 초기 SNS를 통해 꾸준히 제기한, 지열발전소 가동과 포항지진이 연계됐을 것이라는 의문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애석하게도 '사이언스' 논문 게재 뉴스는 그날 열린 세기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묻히고 말았다.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의심도 해보지 않고 믿는다는 건 엄밀히 말해서 행위로서의 성립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일탈이며, 그런 점에서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 의심했던 사람일수록 나중에 신뢰가 돈독해진 예가 많다"고 말했다. 양만재 박사의 비판적 안목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포항지진은 한국사회 기득권층과 시민단체와 학회와 일부 미디어 집단의 부조리를 보여준 축소판이다. 지진 발생 원인이 지열발전소라는 최종 결론이 나든 그렇지 안든 간에 그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남 탓만 한 공범들이다. 오히려 용기 있는 시민들을 과소평가하고 비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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