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김정은 핵 포기하면 죽는다, 카다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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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개발 중지 발표를 두고 대북정책에 강경 입장이던 보수진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보수진영도 비슷하다. 미국 공화당의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22일(현지시각) 미국 ABC 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매혹할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못한다"며 북한의 핵개발 포기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사진=ABC 뉴스 인터넷판 캡처)

 


코커 위원장은 리바아 사례를 들며 "카다피는 핵무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죽었다"며 김 국무위원장이 이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핵실험 중단 결정을 쉽게 뒤집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거 위원장은 CNN과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정말 카다피는 핵무기를 포기해서 죽었을까?

무아마드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로 만 29세 나이로 리비아의 통치자가 됐다. 군인이자 정치인인 카다피는 집권 후 줄곧 반미 정책을 폈다.

리비아는 공식적인 핵 보유국은 아니었지만 반미 정책의 하나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 기술은 북한처럼 파키스탄으로부터 지원 받았다. 2003년 10월 미국은 북지중해에서 리비아로 향하던 화물선에서 원심분리기 관련 설비를 압수했다. 이미 미국과 핵무기 폐기 관련 비밀협상 중이던 카다피는 이 일을 계기로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포기했다.

30년 이상 집권한 카다피는 2003년 12월 반미정책 중단과 함께 핵무기 개발 및 개발된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경제 압박 조치 영향 때문이었다. 이후 2004년 미국과 외교 관계가 복원됐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도 받았다. 당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리비아는 핵무기 보유에서 3~7년이 남아 있는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카다피는 2009년 아프리카 53개국 협의체인 아프리카연합(AU) 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외신은 "분쟁에 무기와 돈을 대던 카다피가 아프리카의 평화 중재자로 나섰다"고 보도했다. 카다피는 대외 정책에서도 개방적인 면을 보였다. 하지만 독재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 발생했다. 튀니지 국민은 23년간 장기 집권한 벤 알리 정권에 반대하며 대규모 시위를 했다. 이후 엘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이 정권을 포기하면서 재스민 혁명은 아랍과 아프리카 지역의 첫 민중 혁명사례로 기록됐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혁명은 이집트로 넘어갔다. 이집트에서 30년 이상 장기집권하고 있던 것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었다. 이집트 국민들은 무바라크 사임을 요구했고 결국 무바라크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혁명의 물결은 리비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민들은 1969년부터 2011년까지 42년동안 집권 중인 카다피의 독재를 끝낼 것을 요구했다. 카다피는 사퇴를 거부했고 군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진압했다.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리비아는 내전에 빠졌다. 추정 사망자만 3만 명 이상으로 피해가 극심했다. 카다피는 그해 9월 반군에게 붙잡혔고 10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카다피의 죽음은 아랍권의 독재의 나쁜 종말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됐다.

결국 카다피 몰락의 원인은 핵 포기가 아닌 42년간 이어졌던 독재 정치였으므로 코커 위원장의 발언은 대체로 거짓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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