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文정부 블랙리스트?…프레임에 갇힌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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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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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이곳 워싱턴DC는 전쟁터다. 전쟁 말고는 무역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무역을 전쟁처럼 하고 있다. 세탁기부터 철강, 알루미늄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새 통상 규제가 발표된다. 모든 폭탄은 트럼프의 입에서 떨어진다. 트럼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만큼 정보도 부족하다. 언제 뭐가 터질지는 예측 불가능이다.

느닷없이 폭탄이 떨어질 때 즉각 대응은 필수다. 본진이 오기 전에 적진을 뚫고 어떻게든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 미 의회부터 각종 협회까지 우군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야 한다.

워싱턴DC 주미 대사관은 전장 한 가운데 야전 지휘소다. 대사관 경제공사는 야전 지휘관으로 통상 전쟁 속에서 적정을 파악해 사령부에 정보를 전하고, 하달 받은 작전명령을 실행하는 자리다. 한미FTA 개정협상과 철강관세 폭탄이 겹친 지지난주에는 협상팀 중 한 명이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일이 몰리고 있다.

당장 야전 지휘관 교체가 다음 달 초로 다가왔다. 전장은 급박한데 서울에서는 난데없이 블랙리스트 논란이 벌어진다.

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1순위 추천을 받은 이화여대 최원목 교수가 있다. 청와대가 인사검증 과정에서 과거 보수단체 경력이나 정부 비판 기고 등을 문제삼아 그를 걸러냈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직접 청와대 담당자와 통화한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보수 언론들은 문재인 정권에도 이념 잣대에 따른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이라며 논란을 확대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최종 3인 선발까지도 절차가 석 달 이상 걸렸다. 블랙리스트라는 덫에 걸려 판이 뒤집어진다면 공석 사태는 기약 없이 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야전 지휘관 없이 몇 주를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워싱턴DC는 한가롭지 못하다.

더구나 주미 대사관의 경제공사는 실무급인 국장급 직책이다. 정부 부처 국장급 인사에서 청와대가 예상 밖의 후보를 낙점하는 것을 전 정권에서도 수없이 보아왔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장관이 1순위로 올린 후보자도 떨어지는 일도 왕왕 있었다. 그렇다고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지는 않았다.

또한 블랙리스트는 기회의 차단이다. 전 정권에서처럼 프로그램에서 강제 하차하고, 오디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수많은 경제공사 지원자 중에서 최종 3명을 추려냈다. 최종 후보 3인에 오를 정도면 블랙리스트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블랙리스트' 프레임에는 빠지기 쉽다.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 트라우마 때문이다. 핵심을 보지 못하고 말에 휘둘리게 된다. 진짜 핵심은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그 사람이 적임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블랙리스트라는 색안경을 벗어야 더 확실히 볼 수 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사실 최 교수의 전문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비판적인 대안 제시로 정부 통상정책에 쓴 소리도 마다 않았다. 그의 말처럼 학자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그러나 그가 경제공사 직책에 적합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최 교수는 주로 통상정책의 큰 그림을 제시해왔다. 어찌보면 청와대는 작전을 하달받고 즉각 실행하는 야전 지휘관보다는 작전을 짜는 사령관으로 적합한 인물이라 판단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최 교수는 지난해 11월 모 언론 기고에서 개정협상 범위를 최대한 축소하는 정부의 '스몰 패키지'보다는 (트럼프 등장으로 변모한) '패러다임에 입각한 협상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어떤 전략이 더 나은지는 직접 실행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본진의 사령관인 통상교섭본부장과 야전 지휘관인 경제공사가 작전에 합의하지 못했을 때 벌어질 일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간에서 이직할 때도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이리저리 맞춰본다. 하물며 국익의 최전선으로 장수를 보내야 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블랙리스트라는 색안경은 맞지도 않을 뿐 더러 도움도 되지 않는다. 폭탄이 떨어지는 전장에서 보면 그저 한가로운 말싸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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