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중-예고-예대로 이어지는 성폭력, 대책은 전무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예고에서 문제 일으키고 대학에서 다시 교편잡아, 예술계 폐쇄성으로 성폭력 위험 높아

(사진=자료사진)

 

# 거문고 명인 이오규씨가 국악 전공 제자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수십년간 국악고등학교, 용인대 국악과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씨는 연주하는 법을 알려준다며 가슴을 만지는 등 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생 뿐 아니라 심지어 국악고에 재학중인 미성년 학생에게도 성추행을 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피해자들은 좁은 국악계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배용제 시인은 한 예술고등학교에서 문예창작 실기교사로 재직하면서 제자들을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 배씨는 종로구에 있는 작업실에 미성년 문하생 5명을 불러내 강제추행하고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나를 통해 성적으로 탈선하라"며 어린 학생들에게 범죄를 저질렀다. 재판부는 "당시 학생들은 등단이나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어 자신의 요구를 거스르기 어려웠던 점을 악용했다"며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예술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폐쇄적이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도제식 교육방식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교사나 교수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또한 인맥이나 평판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폭력을 고발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에서 예술전문대학으로 교육 과정이 이어지는 동안 학생들이 구조적으로 성폭력 피해에 더 많이 노출돼 있는 것이다.

특히 연습실 등 닫힌 공간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3년 경남의 국악예술단장은 국악을 배우러 온 중학생을 상대로 연습실 등에서 수차례 성폭행을 저질러 구속되기도 했다. 거문고 명인 이오규씨의 경우에도 연습실에서 제자들에게 성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가는 성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식의 잘못된 성(性)의식을 주입하며 성희롱을 일삼거나 성폭력을 저지르는 경우도 문제다.

배용제는 '문학을 하려면 탈선을 해야한다'는 궤변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접근했다. 여성문화예술연대는 "다수의 남성 예술가들이 '예술가가 되려면 섹스를 많이 해봐야 된다', '색기가 있어야 한다' 등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성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계 특성상 시간강사가 많아 성폭력 가해자들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것도 문제이다. 시간강사들은 보통 학교와 임시직으로 계약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정식 징계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다른 학교로 이직이 가능하다.

수년전 한 예고에서 문학 분야 창작 실기 강사가 성폭력 문제를 일으켰지만 학교에서 정식 징계 절차를 밟지 않아 다른 예술전문대학에서 버젓이 교편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피해 학생들은 폐쇄적인 분야에서 자신의 전공 분야를 이어가기 위해 침묵을 택한다. 숨진 배우 조민기씨의 경우 청주대학교 연극학과에서 그의 성추행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미투 운동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이처럼 예술전문학교에서 성폭력이 심각하지만 관련 대책은 전무한 수준이다. 교육부는 예술 전문 학교에 대한 별도의 매뉴얼이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기초적인 모니터링을 하는 수준이었다.

교육부 내 성희롱 성폭력 근절 TF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한 것으로는 현재까지 예중, 예고에서 문제가 된 케이스는 없다. 예술대학에서 나온 미투가 대부분"이라며 "예술전문학교에 대한 별도의 대책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저희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서 대책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대 공동대표는 "예술대학 내 성폭력 사태를 학교 성폭력 센터나 학교 성평등 위원회가 해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가해자들이 다시 학교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며 "강사계약서에도 성폭력, 성희롱 항목을 추가해 이후 징계가 가능하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조용히 그만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임 사유가 명시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대표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대책에 교육 분야는 빠져 있는데 교육부와 문체부가 책임 부처와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 보다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