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쪽대본에 울고 웃은' 北 응원단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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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30분 사이 지연, 취소, 번복…최지사 "경직된 남북 당국 현주소"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17일 저녁 강릉 세이트존스 경포 호텔에서 열린 최문순 강원도지사 초청 북한 응원단과 기자단 초청만찬에서 북측이 갑자기 철수를 통보하자 최 지사(왼쪽 두번째)가 응원단을 직접 만나 상황을 수습하고 있다. 이날 만찬은 북측이 알수 없는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가 다시 번복하며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여 늦게 열렸다.(사진=윤창원 기자)
17일 오후 6시 강릉 세인트 존스 경포 호텔 4층 북측 응원단 만찬장.

이날 만찬의 총연출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지 수장인 최문순 강원도지사. 제작진은 접경지 철원 출신 김동일 강원도의회 의장, 남북 긴장 국면에서도 사재를 털어가며 남북체육교류에 앞장서왔던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등 강원도, 남북 교류 주요 인사들로 구성됐습니다.

주연은 올림픽을 남북 화합의 장으로 만들고 주요 경기 때마다 분위기를 압도하며 동계스포츠 응원 문화까지 주도하고 있는 북측 응원단. 조연은 이들을 동행 취재하고 있는 북측 기자단이었습니다.

당초 제작 의도대로 시작은 훈훈한 단막극 도입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인제와 강릉, 평창을 오가며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북측 응원단은 이날 역시 평창에서 공연을 열고 행사장에 도착하느라 만찬 시작은 다소 지연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도 앞서 만찬장으로 올라와 포토라인에 자리한 북측 기자단은 최문순 지사는 물론 남측 기자들과 담소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지루함과 긴장을 해소하는 감초 역할을 해냈습니다.

최 지사는 마른 외모의 북측 기자에게 '북의 최문순'이라는 애칭까지 더해주며 기념사진도 함께 촬영하는 여유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흐름은 사전 구성을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만찬장으로 걸음을 옮겨야할 응원단은 차례대로 행사장과 같은 층 화장실만을 사용하고 다시 1층에 정차하고 있던 수송 버스로 이동하길 반복했습니다. 복선이었습니다.


카메라의 불은 켜진 지 오래. 최 지사와 주변의 미소가 초조함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만찬장 주변에 시나리오에 없던 정부 관계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최 지사를 구석으로 불러 귓속말을 하고 빈 방으로 들어가 밀담을 나누기도 합니다.

90분짜리 논픽션(nonfiction)은 픽션(fiction)으로 변해갔습니다.

화기애애했던 북측 기자단은 인솔자의 단호한 신호에 갑자기 정색을 하며 장비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오후 8시 29분 '북측 만찬 취소'. 주최측과 남측 기자들은 버스로 향했습니다.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답은 예상보다 단순했지만 무거웠습니다. 진보, 보수 진영이 함께 귀한 손님을 맞이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참석자를 다양하게 구성했던 원래 대본에 응원단이 아닌 휴전선 너머 북측 당국이 문제를 제기했던 겁니다.

북측이 만찬에서 준비한 공연과 관련해서는 남측 당국이 공연 분량과 내용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골이 깊어졌다는 후문입니다.

제작사가 심혈을 기울인 원래 대본이 아닌 협찬사의 쪽대본이 등장한겁니다.

17일 참석 지연, 취소 등 소동 끝에 재개된 만찬에서 우리측 참석자들과 북측 응원단이 건배를 하고 있다.
결국 최 지사가 버스에 올라 오영철 북한 응원단장을 설득하고 우리 당국에 읍소한 끝에 만찬은 9시가 다 돼서야 가까스로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밤 11시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만찬장을 빠져나오는 북측 응원단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배웅하는 손에 손바닥을 마주치기도 합니다.

한쪽은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고 다른 한쪽은 맛있게 식사를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난 시간 얼마나 남북 관계가 경색됐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죠. 정치적 목적이 전혀 없는 식사마저 남북 당국이 통제하고 관리하는 현재 상황은 빨리 고쳐야 합니다. 남북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먼저 정치 분권, 남북 교류의 분권을 이루는 일도 중요합니다"

버스에 오르는 북측 응원단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흔들던 최문순 지사. 돌아선 표정에는 안도와 진한 피로가 교차했습니다.

남북이 한끼 식사라도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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