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평창 레터]"발끈했던 北 기자님, 우리 모두 기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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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0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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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취재진의 좌충우돌 입촌식 취재기

'우리도 찍갔시요' 8일 오전 강원도 강릉선수촌에서 열릴 ‘2018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선수단 입촌식을 취재한 북한 기자단이 선수촌 입구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선수단의 선수촌 입촌식이 열린 8일 강원도 강릉 올림픽선수촌.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북한 선수단인 만큼 국내외 구름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선수촌 미디어센터에는 일찌감치 기자들이 검색대 앞에 길게 줄을 섰습니다. AD카드를 선수촌 게스트 패스 카드로 교환해주는 자원봉사자는 "오늘 200장이 모두 나갔다"고 귀띔하더군요.

이날은 북한 취재진도 선수촌을 찾았습니다. 원길우 단장을 비롯해 피겨스케이팅 페어 렴대옥, 김주식 등 자국 선수단의 입촌식을 취재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자에 '은방울' 자수가 새겨진 고동색 패딩과 바지를 맞춰 입은 이들 21명 취재진은 통일부, 국정원 직원들의 안내와 경호 속에 선수촌 광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오전 11시 입촌식에 20분쯤 앞서 들어선 북한 취재진 역시 선수단이나 여성 응원단 못지 않게 국내외 취재진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사진, 촬영기자들은 이들의 장비며 복장을 다투어 찍었고, 취재 기자들 역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단 북한 취재진은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북한 취재진은 한 가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ENG 카메라 4대 등 촬영 장비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허가를 받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주관방송사인 OBS 관계자는 영어로 "올림픽 국제방송센터(IBC)에서 발급한 스티커가 없는 장비는 선수촌 반입이 금지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기자의 카메라는 허용되지만 영상 촬영 카메라는 안 된다는 겁니다.

'와 안 된다는 기야?' 북한 취재진이 8일 오전 평창올림픽 북한 선수단의 선수촌 입촌식을 취재하려다 촬영 장비 반입이 금지된다는 말을 듣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주위에는 이들을 취재하려는 국내외 기자들.(강릉=노컷뉴스)

 

이에 북한 취재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다 된다고 해서 들고 왔는데 어떻게 하느냐"면서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어제 조직위원회에 물어볼 때만 해도 문제 없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다시 알아보겠다"고 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취재진은 더욱 국내외 기자들의 집중 관심을 받았습니다. 촬영 세례에 한 북한 촬영기자는 "같은 기자들끼리 이렇게 찍는 것은 실례지 않습니까?"라고 항의했습니다. 이어 정부 관계자에게 "기자들의 촬영 좀 막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촬영이 이어지자 이 기자는 "그럼 나도 찍어야겠다"고 맞불을 놓기도 하더군요. 물론 정말 화가 났다기보다는 장난에 가까운 반응이었습니다.

북한 취재진이 광장 한쪽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운데 행사 3분 전쯤 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정부 관계자가 북한 취재진에게 "문제가 해결됐으니 촬영을 해도 된다"고 전한 것. 또 다른 북한 촬영기자는 "만약 행사를 촬영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 뻔했나"는 질문에 "만약이라는 게 있나? 못 되더라도 찍어야지"라며 웃으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이 허용된 북한 취재진은 이후 일이 잘 풀렸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 취재진은 허용된 구역에서만 촬영과 취재가 가능했지만 북한 취재진은 행사장 안에서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었던 것.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선수단의 모습과 북한 응원단의 흥겨운 공연까지 마음껏 취재했습니다.

'단독 취재?' 7일 북한 선수단의 입촌식은 허용된 구역에서만 취재가 가능한 가운데 한 북한 촬영기자가 행사장 안쪽에서 자유롭게 취재를 하고 있다.(강릉=노컷뉴스)

 

하지만 북한 취재진은 약 40분 간 진행된 입촌식 행사 뒤 다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단상에 오른 북한 선수단을 촬영하기 위해 순식간에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렸기 때문입니다.

뒤로 밀린 북한 취재진은 사다리를 이용해 선수단을 촬영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마이크 봉 등 장비를 든 기자들을 향해 "그 막대기 좀 치워주지 않겠습니까?"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북한 취재진은 선수단의 마지막 모습을 제대로 취재하지 못해 살짝 아쉬운 표정이었습니다.

북한 취재진이 선수촌을 빠져나가는 동안 행사에 앞서 국내외 취재진에게 항의를 했던 북한 촬영기자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취재를 마친 뒤 "그래도 다 잘 됐다"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촬영하던 수많은 국내외 기자들의 열띤 취재 경쟁에 대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이 기자는 "너무 기자들끼리 무질서해"라고 혀를 내두르더군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기자들이 그러지 않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답변은 하지 않았지만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습니다. 행사 전후 한바탕 진땀을 빼야 했던 북한 기자들의 북한 선수단의 좌충우돌 입촌식 취재기였습니다.

'휴 힘들다' 북한 취재진이 8일 북한 선수단의 입촌식 취재를 마친 뒤 선수촌을 빠져나가고 있다.(강릉=노컷뉴스)

 

ps-하지만 북한 취재진도 전 세계 기자들과 마찬가지인 것 같기는 합니다. 북한 쇼트트랙 대표팀의 훈련이 진행된 지난 3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였습니다.

당시 관중석에는 원길우 북한 선수단장이 관계자들과 통일부 직원 등과 함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를 취재하기 위해 국내외 기자들이 다가섰고 잠깐 문답이 오갔습니다. 이후 북한 기자인 듯한 관계자가 원 단장 등과 통일부 직원에게 기념 촬영을 제안하며 가까이 붙어보라고 했습니다.

이들을 카메라로 찍은 그는 주위에 있던 한국 취재진 또한 카메라에 담더군요. 저를 비롯한 한국 취재진이 웃으며 "우리들은 왜 찍으시냐"고 하자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 기자도 똑같습니다"면서 "한국 기자들이 신기해서 그런 겁니다"고 역시 웃으며 답했습니다. 기자들은 전 세계 어디나 똑같은가 봅니다. 입촌식 행사 때 살짝 발끈하셨던 북한 기자님, 성함은 모르지만 이제 화 푸세요. 우리도 똑같은 기자잖아요? ^^*

'다 같은 기자잖아요' 지난 3일 북한 쇼트트랙 대표팀의 훈련 때 북한 기자인 듯한 관계자가 원길우 북한 선수단장(왼쪽 가운데) 등을 취재하던 국내 기자들을 촬영하는 모습. 원 단장과 북한 관계자, 국내 취재진까지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강릉=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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