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경기 링 걸의 모습.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미투(#MeToo) 물결 속에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1(F1)이 이번 시즌부터 여성 경기 진행요원 격인 '그리드 걸'(레이싱 걸)을 배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 때마다 '라운드 걸'과 '옥타곤 걸'을 세우는 복싱과 종합격투기가 포뮬러 1의 방침을 따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숀 브라치스 포뮬러 1 상업 담당 이사는 지난달 31일 "그리드 걸 제도는 오랜 전통이지만, 이러한 전통은 브랜드 가치를 반영하지 않고 현대 사회 규범에도 어긋난다. 올 시즌부터 그리드 걸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시즌 첫 경기인 호주 멜버른 그랑프리(3월 25일)부터 적용된다.
앞서 지난달 27일 영국 프로다트협회도 '워크 온 걸'로 불리는 여성 경기진행 요원을 경기장에 세우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리드 걸·워크 온 걸 같은 여성 경기 진행요원은 대회·후원업체를 홍보하고 관중과 소통하는 역할로 한때 경기장의 꽃으로 불렸지만, 노출이 심한 옷과 선정적 포즈로 성 상품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드 걸 출신 영국 유명 방송인 멜린다 메신저는 "4년간 그리드 걸로 활동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포뮬러 1의 결정은 우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신호"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그리드 걸에 이어 라운드 걸과 옥타곤 걸도 경기장에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단체 '더 우먼스 스포츠 트러스트'(The Women's Sport Trust)는 성명을 내고 "사이클과 복싱, UFC(종합격투기 단체)도 포뮬러 1을 따라야 한다. 포디움 걸과 라운드 걸, 옥타곤 걸을 경기장에 세우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라운드 걸과 프로모터 등 복싱업계 종사자는 라운드 걸을 유지하자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라운드 걸 다니엘 헨슨은 "라운드 걸을 하든, 사무실에서 일하든 그건 그 사람 자유다. 더구나 라운드 걸은 오래 이어져온 전통"이라고 했다. 그리드 걸과 라운드 걸을 겸하는 로렌 제이드 포프는 "우리 생각을 묻지도 않고 우리를 변호한다니 말이 안 된다. 덕분에 직업을 잃었다"고 페미니스트를 겨냥했다.
복싱 프로모터 에디 헌은 "라운드 걸은 복싱의 일부다. 남녀평등·성차별과 관련 없다"고 했고, 또 다른 프로모터 프랭크 말로니는 "어딜 가나 개인의 선택은 존중하지 않고 자기 방식 대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사람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