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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폰으로 적을 죽인다? 게임 속에 펼쳐진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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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문화 읽기 ⑩] 비디오게임의 매체정치학과 페미니즘 서사

2015년 이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문화 콘텐츠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으려는 시도들이 활발해졌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 사업단이 주최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주관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도 한 예다. 영화·미술·공연·대중음악·웹툰·팟캐스트·SNS·게임 등 여러 장르에서 전개되는 페미니즘 문화비평을 두루 다루는 이 강의는 1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다. 1강부터 10강까지 전 강의를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약 100년 전,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애정발표'를 했다
② 영화 '아가씨' 히데코-숙희 옷으로 보는 크로스드레싱
③ "이게 작품이냐?"… 여성이기에 폄하 당했던 예술가들
④ '이상한 여자'… 1970년대 미디어의 성매매 여성 낙인찍기
⑤ 미치거나 죽거나, 급기야 사라진 한국영화 속 여성들
⑥ '썩은 여자'를 자칭하는 후죠시, 그들은 누구인가
⑦ 한때 고흐의 작품도 '퇴폐미술'이라고 비난받았다
⑧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 일으킨 파장
⑨ 페북 스타가 10대 소녀들에게 열어준 새로운 '노동'
⑩ 탐폰으로 적을 죽인다? 게임 속에 펼쳐진 페미니즘
<끝>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쉽게 만날 수 있는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민폐 여주'다. 어떤 문제가 벌어졌을 때 아무것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해결이나 구원을 바라며,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여주인공을 말한다. 이런 서사는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기 게임 슈퍼마리에 나오는 피치 공주다. 피치 공주는 게임 안에서 슈퍼마리오에게 구해지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페미니즘이라는 관점 아래 비평이 시도됨에도, '게임'에서는 이에 대한 반감이 특히 컸다. 서사와 캐릭터 분석이 주를 이루는 페미니즘 비평을 보고 '게임도 안 해 본 사람들이 하는 뭘 모르는 소리' 정도로 치부되는 경우가 잦았다. 일반 게이머뿐 아니라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27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10강 '엄마 딸, 아빠 딸?-비디오게임의 매체정치학과 페미니즘 서사' 강의가 열렸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조혜영 씨는 이날 강의에서 페미니즘을 통해 게임을 바라보고,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게임을 소개했다.

◇ 페미니즘 게임 비평에 반발이 높았던 까닭

지난 2016년 7월, 넥슨의 온라인 액션게임 '클로저스'의 티나 목소리를 맡았던 김자연 성우는 '소녀들에게 왕자는 필요없다'고 쓰인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교체됐다. (사진=김자연 성우 트위터 캡처)

 

조혜영 씨는 우선 게임계에서 인상적이었던 페미니즘 관련 사건들을 먼저 언급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6년 넥슨의 온라인 액션 게임 '클로저스'의 티나 역을 맡았던 김자연 성우 사례가 있었다. '소녀들에게 왕자는 필요 없다'고 쓰인 메갈리아4 티셔츠 인증샷을 올렸다는 이유로 목소리가 지워지는 사실상의 해고를 당해 큰 논란이 됐다.

그로부터 1년 전, 미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조혜영 씨는 "한 여성 게임 개발자(조이 퀸)가 여성의 우울증을 다룬 인디 게임으로 아주 호평을 받았는데, 어떤 게임 잡지 필자가 이 게임이 호평받은 이유는 '(게임 개발자가) 여러 기자, 관계자들과 잠을 잤기 때문'이라고 했던 사건('게이머 게이트')이 있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관점으로 캐릭터와 서사 분석을 해 온 여성 게임 비평가 아니타 사키시안도 피해를 봤다. 조혜영 씨는 "이 사람이 게이머 게이트에 대해 언급을 하자, 심각한 살해 협박을 받아 보디가드를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다"고 전했다.

조혜영 씨는 아니타 사키시안의 장기로 '캐릭터 분석'을 꼽았다. 그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포함해, 옛날 신화나 동화부터 지금의 영화나 게임까지 어떻게 수동적인 방식으로 정형화되어 있고, 이런 흐름이 반복됐는지를 비판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슴과 엉덩이를 이상할 정도로 크게 하고 굉장히 허리를 잘록하게 만든다거나, 얼굴은 8살 아이인데 몸은 성인 여성으로 만든다거나, 분명히 군인 혹은 여전사로 등장하는데 거의 비키니를 입혀 놓은 모습으로 쓸데없이 노출을 한다든지 이런 점 역시 비평해 왔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4년 10월 17일 JTBC뉴스는 여성 주도적 게임을 만들려는 개발자 브리아나 우와 남성 중심의 게임 산업을 비판하던 페미니스트 게임 비평가 아니타 사키시안이 살해나 총기난사 협박을 받은 일을 보도했다. (사진=JTBC뉴스 캡처)

 

조혜영 씨는 '게이머 게이트'와 아니타 사키시안에 대한 공격을 들어, "그동안 여성 게임 개발자는 이런 식의 주로 '꽃'으로서 주목을 받았기에 호평을 받는 데에 대한 반발이 분명히 존재했다"면서 "남성들이 자신의 영역과 공간으로 여겼던 곳에 여성 게이머, 여성 게임 개발자들이 진입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게임계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비하와 차별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조혜영 씨는 "10~20분 정도 하는, 짧게 치고 빠지는 테트리스 같은 캐주얼 게임이 있다. 콘솔이나 높은 사양의 PC로만 할 수 있고 플레이 시간이 길며 지난(지극히 어려운)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하드코어 게임이 있다. 이때 캐주얼 게임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하드코어 게임은 '남자들이 하는 것'이라는 식의 비하가 일어난다"고 전했다.

◇ '곤경에 처한 처녀' 서사로 다시 보는 슈퍼마리오

조혜영 씨는 이미 하나의 관용구처럼 굳어진 '곤경에 처한 처녀' 서사를 게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곤경에 처한 처녀는 저 먼 옛날 신화에서부터 존재했다. 잘 알려진 '안드로메다-페르세우스' 일화가 대표적이다.

에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는 출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은 안드로메다가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드러내 놓고 자랑했다는 이유로 '여자의 허영을 도저히 볼 수 없다'면서 크게 분노했다. 페르세우스가 바다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진 안드로메다를 구한다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로 마무리된다.

조혜영 씨는 "안드로메다가 제물로 바쳐질 당시 상황을 그린 그림이 많이 남아있는데 대부분은 안드로메다는 나체로 쇠사슬에 묶인 모습이다. 바다 괴물이 등장해 잡아먹는, 실질적으로 강간과도 같은 묘사로 재현돼 있다"며 "안드로메다는 곤경에 처한 처녀의 전형이다. 위험에 빠졌으나 자기가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구원을 기다리는,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이라고 전했다.

게임 '슈퍼마리오'와 '동키콩'에는 '곤경에 빠진 처녀' 서사가 등장한다. (사진=김수정 기자)

 

하지만 이 '곤경에 빠진 처녀'의 맹점은 정말로 그 '여성들'에게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하기 위한 장치로서 쓰인다는 점이었다. 조혜영 씨는 "능력과 재능이 없어서 구원받는 게 아니다. (이야기 자체가) 캐릭터가 어떤 것도 하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포획하고 가둬두고 아무도 못 만나게 한다"며 유사한 예로 '라푼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인어공주' 등을 거론했다.

조혜영 씨는 "신체 훼손을 당하는 동화의 여주인공은 '다리', 즉 이동성과 연관이 있다.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은 후 남성들이 홀릴 만한 백옥같이 예쁜 다리를 얻었다. 다리를 얻은 대신 걸을 때마다 살이 에는 듯한 고통을 겪는다. 유리구두 신은 신데렐라나 춤을 추다 다리가 잘리는 분홍신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신체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처한 이들은 박탈감, 무기력증, 불안감을 느낀다. 이건 사실 여성 캐릭터의 문제라기보다는 서사 구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기 게임 '슈퍼마리오'에도 곤경에 빠진 처녀가 나온다. 조혜영 씨는 "에피소드가 끝나고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피치 공주가 납치당한다. 게임 안에서 피치 공주는 2/3 정도는 납치만 당한다. 그 역할만 하다가 끝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슈퍼마리오'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동키콩'에서도 이미 나왔다. 여주인공 '폴린'이 납치당한다는 '동키콩'의 서사는 만화 '뽀빠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조혜영 씨는 "매 에피소드에서 올리브가 납치당한다. 올리브는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느냐, 올리브만 아니면 아무 문제도 안 일어난다 등등 민폐 캐릭터라고 욕을 먹었다. 그러나 이 사단의 모든 원인은 뽀빠이다. 뽀빠이가 힘을 자랑하고 영웅이 되어야 하니까 이런 서사 구조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페미니즘적인 시도를 한 게임은 없을까

미국의 여고생들이 만든 게임 '탐폰 런'. 돌진해 오는 적을 탐폰을 던져 물리치거나 점프를 해서 피해야 한다. (사진='탐폰 런' 캡처)

 

게임계 내의 반발이 있지만, 페미니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게임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물량과 비용이 투입된 대규모 게임보다는 혼자서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디 게임' 장르에서 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혜영 씨는 '브레이드', '페이퍼 플리즈', '허 스토리', '탐폰 런' 등의 인디 게임을 소개했다. 조혜영 씨는 "'허 스토리'는 게이머가 경찰관이 되어 여러 명의 여성 인터뷰를 보고 어떤 사람이 범인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여자들의 버릇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소년들을 생리 도구인 탐폰을 던져 해치우는 '탐폰 런'은 여고생들이 만든 게임이다. 조혜영 씨는 "개발자들은 쉽게 이야기되지 못하고 터부시되는 생리를 게임으로 재밌게 풀어보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여성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를 탄생시킨 게임 '툼레이더'도 2013년 리부트 버전에서 변화를 꾀했다. 조혜영 씨는 "대중적으로 흥행한 게임 가운데 매우 드문, 플레이어 캐릭터가 여성인 게임"이라면서도 오랫동안 여성혐오적인 게임으로 인식됐다고 짚었다.

게임 '툼레이더'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의 변천사 (사진=김수정 기자)

 

그는 "여성 캐릭터로 게임을 하지만 굉장히 성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액션 여전사인데 민소매 상의와 짧은 바지를 입고 뛰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 게이머들이 성적 대상화를 하는 방식으로 플레이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영국의 판타지 작가인 리아나 프렛쳇이 작업한 '툼레이더 리부트'(2013)에서 라라는 달라졌다. 배꼽이 드러났던 상의는 배를 덮었고, 짧은 바지는 활동성이 더 강조된 긴 바지로 바뀌었다. '노출을 통해 남성 게이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식을 배격하겠다'는 리아나의 의도가 반영된 부분이다.

또한 리부트 버전에서는 게임에서 '서사'가 얼마나 중요한 지가 드러났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퍼즐 게임이었던 '툼레이더'는 라라의 전사에 집중했다. 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탐험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를 살핀 것이다.

조혜영 씨는 "라라가 탐험가로서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어떻게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됐고 능력을 갖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최초의 탐험이라는 설정을 하고 있다"며 "또, 리부트에서는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며, 샘이라는 다른 여성과의 서사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조혜영 씨는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시작해 문학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헤븐리 소드', 이른바 나쁜 가부장을 죽인다는 얼개를 가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 조엘과 멸망한 세계에 적응해 가는 소녀 엘리의 이야기를 담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특정 성별로 분류되지 않아 왔던 기계의 '중립성 신화'를 짚어 본 '포탈', 출시 때부터 "우리가 기다려 왔던 페미니즘 게임"을 표방했던 '호라이즌 제로 던' 등을 소개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조혜영 씨는 27일 오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10강의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엄마 딸, 아빠 딸?-비디오게임의 매체정치학과 페미니즘 서사'를 통해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게임 비평 사례와 페미니즘 요소가 들어간 게임을 소개했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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