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사법부 블랙리스트, 개혁의 계기가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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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사진)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추가조사위원회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법원행정처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책까지 마련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위원회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는 않았다고 결론 내렸지만, 이는 마치 '소리없는 아우성'같은 형용모순으로 들린다.

심지어 각 법원에 이른 바 '거점판사'를 심어놓고, 법원의 동향을 주기적으로 보고받기도 했다. 말이 좋아 '거점판사'지 판사를 망원으로 삼아 다른 판사들을 감시했다는 말이다.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법원에서 국정원의 첩보수집을 방불하는 부당한 사찰이 그것도 판사에 의해서 이뤄졌다.

판사들에 대한 사찰과 정보수집은 모두 법원행정처를 통해 진행됐다. 행정지원조직에 불과한 법원행정처가 이처럼 직무범위를 넘어선 월권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제왕적 권한을 가진 대법원장이 힘을 실어 줬기 때문이다.

조사위원회는 동향파악등을 통해 특정법관들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조사하지 못한 문건이 7백건에 이르는 만큼 실제로 부당한 행위가 없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심지어 법조계에서는 법원행정처가 중요한 판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특정인에 대한 영장기각이나, 구속적부심 같은 사안에도 관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같은 의혹은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도 제기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대법원의 유착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원세훈 전 원장 재판의 핵심은 선거법 위반여부였다. 만일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유죄로 확정되면,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이 흔들릴 수 있는 중대한 문제였다.

법원행정처는 2심 재판에 대한 동향등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유죄판결이 나오자 사법부의 진의가 왜곡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우려 섞인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재판 결과를 놓고 청와대의 눈치를 봤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법원은 항소심 결과를 전원일치로 깨고 파기 환송했다. 이 과정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개입한 흔적도 나타나고 있다.

만일 사법부가 그것도 대법원이 권력과 유착해 재판결과를 왜곡했다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질서가 근본부터 흔들린다는 뜻이다.

삼권분립의 한 축이 무너지고, 사법부가 권력에 예속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4.19과 6월 항쟁, 촛불혁명을 통해 어렵게 이뤄낸 우리의 민주질서가 사법부 최고위층의 부당한 야합에 흔들릴 수는 없다.

지금까지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에게는 조직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판사들에게는 승진을 위한 사다리로 악용돼 왔다. 이런 부당한 순환고리는 이제 끊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법부의 손상된 권위를 회복하고,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확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는 검찰이나 특검의 엄정한 수사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해야하고, 법원행정처의 기능 재정비를 포함해, 대법원, 더 나아가 대법원장의 권한에 대한 법률적인 재검토 작업이 진행돼야한다.

사법부의 자정노력도 물론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번 사태는 새로운 수장을 맞은 사법부가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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