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진 발생 한 달…끝나지 않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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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도 '쿵'소리에 놀라고 건물 무너지는 꿈까지 '트라우마' 심각

13일 오후 지진으로 건물이 3~4도 정도 기운 흥해 대성아파트 전경.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아파트 공터에는 집을 떠난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만 남겨져 있다. 문석준 기자

 

지난 13일 오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지난달 발생한 규모 5.4의 강진으로 건물이 3~4도 정도 기울어져 '피사의 아파트'로 불리는 곳이다.

흰색 아파트 벽면 곳곳에서는 크게 갈라지거나 부서진 곳이 눈에 띄었고, 지반이 침하된 1층 집의 베란다 난간은 한눈에 보기에도 크게 휘어져 있었다.

아파트 공터 곳곳에는 주민들이 이사를 가면서 버린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화단은 말라버린 잡초만 무성했다.

살던 주민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면서 이곳은 마치 흉가처럼 변했다.

지진 발생 한 달이 다됐지만 주민들의 공포는 여전하다.

지반이 침하된 대성아파트 1층 집의 베란다 난간. 한눈에 보기에도 크게 휘어져 있다. 문석준 기자

 

박봉필(85.여)씨는 "자다가도 '쿵쿵'소리만 나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불안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지난 한 달 동안 마음이 너무 불안해 낮이면 자주 밖에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민(13)군과 최윤성(13)군은 "지진 발생 이후 가끔씩 아파트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꿈을 꾼다"면서 "여진을 느낄 때마다 너무 불안하고, 더 큰 강진이 올까봐 가끔씩은 친구들과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했다.

대피소 등에 설치된 정신건강 상담센터에는 지진에 따른 불면증과 불안감 등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까지 상담을 받은 주민만 8천683명에 이른다.

심리지원단 관계자는 "지진 트라우마가 심한 분은 햇빛에 나가면 몸이 쪼그라들 것 같다고 호소하는 분도 있었다"면서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몸으로 흡수된 공포감 때문인지 힘들어 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 달째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이재민들의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있다. 특히 강력한 한파까지 기승을 부리며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대성아파트 주민 김정길(58.여)씨는 "흥해실내체육관에서 1달째 생활하다보니 자는 것과 먹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며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입장에서 일까지 하다 보니 몸은 천근만근이다. 빨리 집이 마련돼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13일까지 지진으로 주택이 크게 파손돼 '위험 판정'을 받아 이주해야 하는 이재민은 539가구로 늘었다.

이중 이사를 마친 이재민은 절반 수준인 277가구 687명으로 포항시는 남은 이재민의 신속한 이사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집이 크게 부서져도 안전진단 결과 '이상이 없다'고 나온 이재민들의 불만과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

지진으로 아파트 건물 외벽이 갈라진 흥해 한미장관아파트 모습. 이 아파트는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문석준 기자

 

흥해 한미장관아파트 주민 박일성(69)씨는 "여진이 계속 일어나면서 아파트 곳곳의 균열이 더욱 커지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했다"면서 "상당수의 주민은 친척집 등으로 빠져 나갔고, 지금 여기 사는 사람은 노약자나 환자 등 어쩔 수 없이 거주하는 사람이다. 정부와 포항시는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또 다른 주민 김모(63)씨도 "지진으로 집 내부 집기가 쏟아지면서 다 부서시고 벽에 큰 금이 갔는데도 포항시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다시 들어가 살라고 한다"며 "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이 당국의 섣부른 판단에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주민들이 결과에 수긍하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고, 현재 주민들이 추가 조사를 요청한 건물을 중심으로 정밀 검사를 벌이고 있다"면서 "하루 빨리 이재민들이 예전의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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