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지금의 사법부를 본다면…"

권력의 시녀가 된 사법부..그 어둠에서 발견한 강직한 큰 별, 김병로
- 20년간 독립운동가들을 대변해온 '지공무사'의 법조인
- 최(最)열렬 변호에 법원 직원들이 재판정에 몰려와 구경하기도
- 대통령에게도 거침없이 쓴소리 "이승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법원장"
- 한인섭 "사법개혁,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먼저 올바르게 서는 것"
- 연말까지 수사 마무리 짓자는 문무일…"공소시효가 끝난 것도 아닌데 왜?"
- "적법절차에 따라 혐의 있으면 수사하면 되는 것. 속도 조절 할 필요 없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7년 12월 6일 (수)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한인섭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 정관용> 사법개혁, 검찰개혁이 지금 시대적 과제가 되어 있죠. 눈 여겨 읽어볼 만한 책이 한 권 나왔는데요.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의 삶을 다룬 <가인 김병로>라는 제목의 무려 1,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툼한 책입니다. 이 책을 쓰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한인섭 교수, 어서 오십시오.
 
◆ 한인섭>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한 교수께서는 김병로 선생에 대한 글들을 오래전부터 써오셨었죠?
 
◆ 한인섭> 네, 지난 10년 동안 이것저것을 계속 써서 전체 그림자를 잡아서 확고한 형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 정관용> 우리 청취자께서 이름은 들어봤는데 아실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니까 초대 대법원장이신데 일제시대 때부터 어떤 삶을 사셨는지 간략히 정리해 주시면.
 
◆ 한인섭>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초대 대법원장. 그래서 사법권 독립의 수호자였다, 이제 이런 것이 두루 알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이전에 일제시대에 항일 변호사로 20년 동안 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의 변호인으로서 빠짐없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1, 2년은 할 수 있지만 20년 동안 일관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죠.
 
◇ 정관용> 법정에서도 독립운동가들 변호하면서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를 많이 치셨다고요?
 
◆ 한인섭>법정에서 어떻게 했냐면 유조리, 최열렬한 변호를 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정관용> 무슨 뜻이죠?
 
◆ 한인섭> 가장 조리 있고 가장 열렬하게 변론을 해서 1시간 이상 변론을 토해내니까 입가에 침이 하옇게 묻을 정도로 변론을 했다고 그러고 그 변론을 보기 위해서 법원 직원들이 재판정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일화가 많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이제 해방 되자 초대 대법원장을 맡게 되셨고?
 
◆ 한인섭> 네, 한국의 사법부 하면 원래 건국기의 사법부는 아주 힘이 없는 거잖아요, 입법행정에 비해서. 그런데 이분이 사법부를 맡아서,거의 그분의 영향력 안에서 사법권 독립이 유지가 됐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고.
 
◇ 정관용> 그걸 상징해 주는 무슨 사건 같은 게 있습니까?
 
◆ 한인섭> 권력이 이제 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할 때 가인 선생이 이것을 단호하게 막았고 그 다음에 권력의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끝까지 보호를 했습니다. 그런데 가인 선생이 대법원장을 그만둔 뒤에는 법관 4분의 1을 이승만 대통령이 탈락시켜버려요.
 
◇ 정관용> 4분의 1이나?
 
◆ 한인섭> 4분의 1을 탈락시켜버립니다. 그러니까 가인 선생이 대법원장을 할 때는 그런 걸 꿈을 꿀 수도 없었던 거죠.
 
◇ 정관용> 게다가 우리 법 체계를 정비하는 데도 큰 공을 세우셨다면서요?
 
◆ 한인섭> 우리의 기본 법률. 기본 법이라고 하면 민법, 민소법, 형법, 형소법 이런 기본 법률의 그냥 기틀을 만든 정도가 아니고 초안을 1조부터 1000조까지, 1조부터 365조까지 직접 다 썼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한인섭> 그 초안의 토대 위에 그다음에 법정편찬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그 다음에 국회에 이 안이 정부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가인 선생이 대법원장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건국계의 입법자입니다. 입법자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죠.
 
◇ 정관용> 대법원장은 몇 년 하신 거죠?
 
◆ 한인섭> 대법원장을 9년 4개월을 했습니다.
 
◇ 정관용> 9년 4개월. 퇴임하신 후에는요?
 
◆ 한인섭> 퇴임하신 후에는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58년, 59년에 이승만 정권이 경향신문을 폐간하고 진보당을 해산시키고 그다음에 법관들을 4분의 1을 쫓아내고 이런 굉장히 악전을 자행하는 거죠. 권력남용 횡포를 하니까 아주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언론에 논설 같은 걸로 가장 강도 높게 그런 권력의 폭정을 비판하고 그다음 1960년에 1월달에 부정 선거는 천추의 한이 될 거라고 분명히 경고했는데 그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에 3. 15가 나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는.
 
◇ 정관용> 4. 19가 가고.
 
◆ 한인섭> 사퇴로 까지 빚어졌죠. 그 당시 재야의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자, 헌법수호자 역할을 실행한 것이죠.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사진=한인섭 교수 제공)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사진=한인섭 교수 제공)
◇ 정관용> 아무튼 일제시대의 독립 운동을 변호하는, 그리고 해방되자마자 우리 사법권 독립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우리 법을 하나하나 다 직접 만들어내신 게다가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주의의 표상과 상징이 되신 그런 삶. 우리 근현대사에 이런 분 또 있습니까?
 
◆ 한인섭> 또 있을 수는 없고 또 예컨대 다른 훌륭한 분들이 있겠죠. 그런데 현재의 입장. 그때는 단 60~70년 지난 현재 입장에서 볼 때 영향력, 지속적 영향력의 면에서 가인 선생을 따를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현재의 법제, 현재의 사법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그 틀을 가인 선생님이 만들어냈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다른 분하고 비교되기가 굉장히 어렵죠.
 
◇ 정관용> 법체계와 법전을 직접 만드셨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화두가 되는 게 권력과 사법부의 관계, 사법부 독립의 문제 이거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과거 역사를 거슬러서 귀감으로 삼아야 할 시절은 언제인가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 한인섭> 그래서 제가 찾아 거슬러 올라갔죠. 처음에는 우리가 캄캄한 절망의 시대에 유신, 5공 살다가 법조인들의 삶이 별로 아름답지 않았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한인섭> 그래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추적을 하다가 거기에 드문드문 별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별자리를 그려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니까 별자리 한가운데 가인 선생님이 계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냥 10년 동안 푹 빠져서 그것을 정리하고 그러면서 우리 21세기 독자들에게 그 발자취를 같이 걸어가는 심정으로 느끼게 해 줘야겠다. 이렇게 해서 한땀한땀 써내려간 겁니다.
 
◇ 정관용> 방금 언급하셨듯이 유신시대, 군사독재정권 시대에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였단 말이죠. 어찌 보면 신생 독립국의 가장 독립하자마자의 초기 그 혼란스러운 시간이 우리 사법부의 역사에서는 가장 사법부 독립이 잘 지켜진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네요.
 
◆ 한인섭> 네, 그렇습니다. 근데 거기서 제도라기보다는 가인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라는 게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반열에서 한치도 뒤지지 않았죠. 그다음 해방 이후에 건국의 두 중심기둥. 이건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면 예컨대 가인 선생은.., 가인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이 임명을 했지만 사실은 이승만 대통령이 원한 인사도 아니었고 그런 상태에서 대법원장이 됐을 때 저는 가인 선생이 이승만의 대법원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법원장, 대한민국의 입법자로서 스스로 역할을 굳건하게 잘 세워나갔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다른 표현을 쓰자면 이승만 대통령도 가인 선생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 한인섭> 그렇습니다.
 
◇ 정관용> 절대 함부로 못했을 것이고. 바로 그런 관계.
 
◆ 한인섭>서로가 존중할 수밖에 없는, 그렇지만 또 대통령 권력남용을 많이 하잖아요. 그럴 때 가인 선생은 대법원장으로 있을 때도 쓴소리를 정확하게 법리적으로 전개를 했고 그다음에 대법원장 퇴임 이후에도 그러한 것을 법리적으로 또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방향을 잡아나갔던 것이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사진=시사자키)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이 책 표지에 보니까 '지공무사'(至公無私)라고 가인 선생께서 직접 쓰신 거죠, 이건?
 
◆ 한인섭> 가인 선생의 삶을 어떻게 한마디로 이야기할까. 쭉 찾아보니까 자꾸 지공무사. 무사, 그냥 사사로움 없이 모든 것을 공익에 입각해서 사고하는.
 
◇ 정관용> 보통 우리가 선공후사(先公後私) 그러는데 그게 아니고.
 
◆ 한인섭> 선공후사는 급하면 사도 챙기는데.
 
◇ 정관용>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
 
◆ 한인섭>지공무사는 사가 아예 없는.
 
◇ 정관용> 아예 없는 거죠.
 
◆ 한인섭> 그래서 이런 삶은 정말 드물게 나타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후학들이 이 삶을 100% 본받으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고 자기 삶이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중요한 참고 내지 비교사례로써, 비교모델로써 한번 음미하고 있으면 그것만 해도 자기 몸가짐을 곧추세우고 방향을 잡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렇죠. 지금 이 시점에 가인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우리 사법부를 보고 뭐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까?
 
◆ 한인섭>그건 모를 일이죠. 각 시대적 사명감이 다르니까. 그렇지만 가인 선생이 보여준 그 모델을 보면 법관은 예를 들어 청렴, 강직해야 된다는 것이고 그다음에 공무원이라든지 공직자의 경우에는 사사로운 면을 완전히 배격해야 된다는 자세.
 
◇ 정관용> 지공무사.
 
◆ 한인섭>자세로 나아가야 하니까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각 공직자들 혹은 직책을 맡고 있는 분들이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자기 몸가짐을 바로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그래서 법조 윤리, 법관 윤리, 공직자 윤리 해서 아주 표상이 될 만한 그런.
 
◇ 정관용> 아주 큰 그림으로 큰 말씀을 주셨는데 조금 쟁점이 되고 있는 예컨대 법관 승진제도를 없앤다든지 법원행정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 구조를 바꾼다든지 이런 것들이 사법부 개혁의 지금 화두로 떠올라 있는 쟁점들 아니겠습니까? 제가 조금 여쭙기 뭐합니다마는 이런, 큰 주제지만 방금 표현에 의하면 작은 그런 이슈들에 대해서는 가인 선생은 뭐라고 하셨을지 혹시 유추가 안 되십니까?
 
◆ 한인섭> 그런데 저는 예컨대 우리가 시스템을 바꿔야 된다는 이야기도 하고 그다음에 사람이 바로서는 게 중요하다는 이런 얘기도 하는데. 저는 현재의 시스템이 정말로 올바른 공직자의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사람이 문제일 때 제도의 탓을 하는데 현재의 제도에서 사람이 올바르게 서는 것이 하지만 더 중요하다. 오히려 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도가 사람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 되는데 그것은 그렇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올곧게 살려는 그런 노력도 중요하죠.
 
◇ 정관용> 아, 물론이죠. 가장 기본이죠. 또 너무 현안을 여쭤봐서 그럴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지금 이른바 적폐청산이라고 해서 검찰은 대대적인 지난 정부의 각종 부패와 비리들을 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 또 국민적 지지가 실려 있어요. 그런데 사법부에서, 몇 건의 예컨대 구속영장 기각이라든지. 또 구속적부심을 통해서 석방한다든지 또 그것 때문에 대법원장이 한마디하시기도 하고. 이런 또 미묘한 쟁점 말이죠, 이런 상황.
 
◆ 한인섭> 이런 상황은 적폐청산으로 표현하지 말고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지금 수사하는 문제죠.
 
◇ 정관용> 그러고 있죠.
 
◆ 한인섭> 고위공직자는 범죄는 수사가 되어야 되고 수사가 절차대로 되는데 구속영장이 발부되건 기각되건 그것은 절차에 따라서 진행되고 있는 거잖아요. 구속영장이 몇 건 기각되었다고 수사를 문 닫아라고 하는 것은.
 
◇ 정관용> 아닌 거죠.
 
◆ 한인섭> 눈앞의 범죄에 대해서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죠. 검찰은 범죄의 혐의가 있으면 수사해야 한다고 우리 형사소송법에 적혀 했어요. 그냥 법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사진=자료사진)문무일 검찰총장(사진=자료사진)
◇ 정관용> 일희일비해서 무슨 영장기각 인용 가지고 입초시에 올릴 일이 아니다.
 
◆ 한인섭> 공소시효가 끝난 것도 아닌데 지금 왜 12월 말에 그만둬야 되느냐 그거 이상하잖아요. 범죄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해야 되는 것이고. 
 
◇ 정관용> 검찰총장이 가능하면 연말에 끝내겠다 이렇게 말한 게 이상한 거네요. 
 
◆ 한인섭> 그것은 전체적인 형사정책의 초점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우리는 범죄의 협의가 있으면, 그것도 이제 범죄 혐의가 처음으로 밝혀지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그 국면에서는 영장심사도 하고 기소도 하고 증거의 다툼도 하고 이런 유의 과정들에서 약간의 마찰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적법절차의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일희일비하거나 속도를 늦추거나 완급을 조정한다거나 그럴 필요는 원칙적으로는 없는 거죠.
 
◇ 정관용>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한인섭> 네. 법적 과정, 사법적 과정, 형사절차의 과정은 그거대로 맡기고 국민들은 관계 법률가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법대로 해 나가도록 성원도 하고 또 감시도 하고 이렇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지금 한인섭 교수께서 법무부 안에 만들어진 법무검찰개혁위원회 또 위원장도 맡고 계시잖아요.
 
◆ 한인섭>그렇습니다.
 
◇ 정관용> 검찰개혁 잘 될까요, 이번에?
 
◆ 한인섭> 검찰계획은 국민적 과제로써 가장 우선순위가 높잖아요. 과거의 독재 하에서는 정보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다가 그다음에 문민화되고 난 다음에 검찰의 권력이 너무 커졌어요. 그래서 그것을 정상화해야 되는 것이고요. 거기서 국민적 염원이 공수처를 제대로 만들어서 고위공직자의 범죄에 대해서는 검찰과 함께 공수처를 만들어서 해야 된다는 이런 염원들이 있으니까 그 염원들을 잘 받아서 입법화시키고 그다음에 그에 따라서 우리가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나가는데 협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뭐 어렵지만 해야 될 과제는 해야 하는 겁니다.
 
◇ 정관용> 가인 김병로 선생과 한 10여 년 대화를 나누시더니 모든 게 명쾌해졌네요. 해야 할 과제는 하고 원칙대로 하면 되고.
 
◆ 한인섭> 네, 지공무사.
 
◇ 정관용> 알겠습니다.
 
◆ 한인섭> 강직, 강골 이런 자세로 하면 되는 거겠죠.
 
◇ 정관용> 우리 법관, 사법부뿐만 아니라 모든, 특히 공적인 영역에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우리 어르신들 가운데 가장 표상이 된 한 분, 가인 김병로 선생을 안내해 주신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한인섭 교수 오늘 고맙습니다.
 
◆ 한인섭>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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