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와대 국민청원과 공론화의 딜레마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째에 만들어진 '국민청원제'가 운영 100일을 맞았다.

국민 누구나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국민소통 광장'에서 청원과 제안이 가능하고, 동의 의사도 밝힐 수 있다.

'국민소통 광장'은 이름에서처럼 촛불 시민혁명에 따른 광장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그리고 쌍방향의 열린 소통이 연상된다.

청와대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이 담겨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100일 동안 올라온 청원은 하루 평균 5백여 건 씩 모두 5만여 건에 이른다.

국민들의 높은 참여 열기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청와대는 한 달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이뤄진 청원에 대해서는 공식 답변을 하는 내부 기준까지 마련했다.

(사진=청와대 유튜브 영상 캡처)(사진=청와대 유튜브 영상 캡처)
23만 명이 넘는 청원 동의가 이뤄진 낙태죄 폐지에 대해 26일 청와대가 입장을 표명한 것도 이 같은 취지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청원이라도 국민적 관심이 높으면 적극적으로 답변할 것을 지시했다.

'이국종 신드롬' 속에 역시 23만 여건의 청원이 몰린 권역외상센터 지원문제도 조만간 정부 차원의 답변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가 사람들로 북적북적 거리는 모양새다.

'국민소통 광장'이 다양한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공론장(公論場·public sphere)'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는 '공론장'이야말로 국가와 시민을 매개하면서 여론을 형성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거점이라고 강조했다.

직접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넘어 요즘 대세로 떠오른 숙의민주주의의 토대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비록 한 명 한 명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함께 하는 다수는 가장 훌륭한 소수의 사람들보다 더 훌륭할 수 있다" 집단지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와대의 '국민소통 광장'이 바람직한 공론장으로 기능하기 위한 두 가지의
전제조건이 있다.

하나는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 당국의 '엄중한 책임 의식'이다.

(사진=자료사진)(사진=자료사진)
실제로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국민청원 가운데는 막무가내 식의 함량미달 글이 수두룩하고, 진영 논리에 따른 이념 대결 글도 비일비재하다.


민의(民意)가 이성적으로 모아지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정책에 반영될 때 청원제도의 실효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공론화를 마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양 내세우는 정부 당국의 자세도 아쉬운 부분이다.

26일 청와대는 낙태 대신 임신중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폐지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낙태 문제는 종교적, 윤리적으로 민감한 이슈인데다가 의료계 내에서도 찬반이 팽팽히 맞서 있다.

더욱이 낙태죄 재개정 여부의 관건은 현재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의 심리와 이후 국회의 입법 과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충남 천안시 계성원에서 열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종합토론회.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지난 10월 충남 천안시 계성원에서 열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종합토론회.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앞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471명의 현자(賢者)들이 건설 재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자 제2, 제3의 공론화위가 등장할 태세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개헌 논의를 위한 공론화위 구성을 권고했고, 청와대 직속의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도 부동산 보유세 인상 문제를 공론화 과정에 부치겠다는 계획이다.


너무 많은 공론화는 자칫 배를 산 위로 올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 당국의 책임 있는 결정을 매번 국민들에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론화는 원칙적으로 정부 정책을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국민청원제를 만들며 청와대가 강조한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문구에서 한 가지가 빠진 것 같다.

'제대로'라는 말이다.

국민은 제대로 묻고 정부도 제대로 답해야 한다. 그래야만 쌍방향의 진정한 열린 소통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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