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이영학 사건 헛발질 경찰, 수사권 조정은 헛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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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13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 북부지방검찰청에 송치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수사팀의 판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휴일이고, 아이가 친구들과 어딘가 가서 하룻밤 자고 그럴 수 있고, 범죄와의 연관성을 잇기엔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페이스북 행적 수사를 했습니다"

오열하고 난리를 쳐도 "단순 가출"이라던 경찰 앞에서 피해자 A(14) 양의 부모는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3시간쯤 뒤 서울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 전담수사팀이 지구대에 나타났지만 놀랍게도 "초기수색이 끝나간다"는 말을 듣고 그냥 돌아갔다. 실종 직후인 지난달 30일 밤이었다.

같은 시각 A 양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집 안방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강원도 영월 산자락 찬 바닥에 버려졌다. 당직교대 후 인수인계 없이 잠을 자고 돌아온 '전담팀'은 이때까지 이미 꺼져있던 A 양의 스마트폰에 전화를 걸거나 페이스북 계정을 탐색할 뿐이었다.

A 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만났던 친구가 이영학의 딸이라는 얘기를 경찰에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같은 중랑서 내 강력팀이 한 달 전부터 '아내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내사중이었다는 핵심 수사단서는 '부서 간 칸막이'에 갇혀 전담팀에 공유되지 못했다.

보다 못한 가족은 결국 건물 5층에 위치한 이영학 집 내부를 살펴야겠다며 지인의 사다리차를 빌려왔다. 경찰청이 보유한 최신식 장비들이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다. 집 안을 들여다본 뒤 "그래도 이 집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어머니에게 "이 집하고는 연관이 없는 것 같다"고 했던 수사관의 말은 결과적으로 무능을 드러낸 꼴이 됐다.

헛발질은 계속됐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이 양이 A 양과 집에 함께 들어갔다가 혼자 나온 장면'을 확인하고도 경찰은 'A 양이 다른 곳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CCTV만 바라볼 뿐이었다. 추석명절 특별 치안활동 기간에 자택을 지키던 경찰서장이 보고를 받은 건 신고 나흘 뒤였다.

여중생을 살해한 ‘어금니아빠’의 딸 이모(14)양이 1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서울북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가장 이목을 끌었던 '범행동기' 규명에도 경찰은 부녀의 진술에 오락가락하며 무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언론이 발로뛰며 어금니 아빠의 이중적 삶과 기형적 가족관계를 파헤쳐 갖다 바쳐도(?) 경찰은 "본 건과 별건이니 추후 수사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다 사건 송치 이후에야 이런 의혹을 밝히겠다며 뒤늦게 전담팀을 꾸렸다.

이밖에도 이영학 아내 사망 당시 이마에 있던 수상한 상처와 성관계 동영상 등을 발견하고도 한 달간 정식 수사에 착수하지도 못한 부분이나 '의붓아버지 성폭행 고소 건'이 속히 해결되지 못한 부분 등에 대해서도 경찰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거실적을 뽐내는 일이라면 구체적인 사건경위나 범행동기까지 먼저 나서서 공개하던 경찰이, 왜 유독 이 사건에서는 고구마 한 트럭 삶아먹은 듯 동문서답하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는지 이제야 좀 알겠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마추어 같은 수사현실의 민낯을 드러내기 부끄러웠을 것이다.

이런 의심은 A 양 부모가 "신고 당시부터 이 양의 존재를 경찰에 알렸다"고 언론을 통해 밝히면서 증폭됐다. "어머니가 일찍 알려줬으면 이 양을 특정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던 경찰의 말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만약 사실확인 결과 초기대응에 실패한 경찰이 책임을 유가족에게 돌리기 위해 거짓말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경찰은 신뢰의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경찰은 요즘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새정부가 숙원인 '수사권조정'에 관심을 보이자 '인권경찰'이 되겠다며 화답하고 있다. 관련 긴급회의가 잇달아 열리는가 하면 일선서에서는 '인권 빵'이라는 이름의 소보로빵을 주변에 나눠줬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할 정도다.

하지만 경찰은 이제 이 사건 이후 더 이상 공허한 구호나 쇼잉(showing)에 천착할게 아니라 수사권 조정, 혹은 독립의 기본 전제라 할 수 있는 수사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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