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다섯으로 풀어낸 전도연의 20년 영화史


(사진=영화 '밀양' 스틸컷)(사진=영화 '밀양' 스틸컷)
우리 삶을 돌아보면 배우 '전도연의 영화'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에게 전도연은 '해피엔드'의 불행한 사랑을 자처한 보라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밀양'의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 신애다.

1990년대 말부터 그가 한국 영화사에 남긴 수많은 작품들은 그 깊이와 다양성 면에서 독보적이다. 흔하디 흔한 신파도 전도연이 하면 가슴 아픈 멜로가 되고, 전도연은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작품을 빛낼 줄 알았다.

작지만 강인한 이 거인은 '아름다운' 여성 캐릭터가 아닌 우리 시대 가장 '보통의 얼굴들'을 연기해왔다. 치정의 중심에 선 '해피엔드'의 최보라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여성 캐릭터를 완성했고, 계속 좁아지고 있는 여성 캐릭터의 지평을 넓혀왔다.

전도연의 초기작을 함께 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지금까지 그와 동고동락한 송종희 분장 실장은 그의 매력을 한 마디로 간단히 정의한다. '전도연은 전도연이다.'

지금의 전도연이 있기까지, 그가 보내 온 영화 인생 20년을 돌아보고 그 작품에 얽힌 비화들을 들어봤다. 다음은 전도연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사진=영화 '접속' 스틸컷)(사진=영화 '접속' 스틸컷)
▶ 인터넷에서 20주년 사진전이 열렸다. 지난 시절 모습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 사실 나는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여행가도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사진을 보면서 뭔가 추억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작품을 통해 보니까 되게 감사했다. 아직도 '접속'의 나는 참 낯설다.

▶ 영화 '밀양'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밀양'을 계기로 연기 인생에서 전환점을 맞은 부분이 있을까.

- '밀양'은 내게 최고의 기쁨이기도 하고, 최고의 절망이기도 하다. 그걸 끝으로 연기를 그만둬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걸 시작으로 뭔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동시에 이제 내게 뭘 더 기대할까, 이런 생각도 가졌었기 때문에 굉장히 극복하고 싶었던, 산 같은 작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넘으려고 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걸 하면 넘어설 수 있었는데 그 때는 되게 안간힘을 썼다.

▶ 결혼한 지금, '밀양'의 신애를 연기한다면 과거와는 다를까.

- 그런 생각을 나도 해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었고 내게는 알 수 없는 감정이었기 때문에. 얼마 전에 부천영화제에서 '밀양'을 봤는데 그래서 오히려 신애라는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한다면 더 잘하거나 혹은 못하거나 개인적인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저 연기가 진짜 연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사진=영화 '무뢰한' 스틸컷)(사진=영화 '무뢰한' 스틸컷)
▶ 영화 '무뢰한'에서는 수많은 남자 캐릭터 속 홀로 여성 배우로 활약했었다.

- 그 때가 제일 힘들었다. 무뢰한들 속에서 살아남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남성중심의 현장이라 그 안에서 김혜경처럼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나고나서 보니 그렇게까지 치열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순수한 열일곱 소녀 홍연을 연기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해피엔드'에서는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 최보라를 연기하기도 했는데.

- 그 때는 정말 당돌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27살이었는데 대본 속의 홍연이가 너무 귀엽고 좋은 거다. 매니저한테 물어봤었다. 내가 홍연이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그럴까? 그랬더니 흔쾌히 될 거라고 하더라. 감독님도 그렇고 주변에서 응원을 많이 해줬다. '해피엔드'는 '나'라는 여배우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여배우가 보여줘야 하는 모습이 훨씬 정형화돼 있었고, 보수적이었다. 거기에 맞지 않으면 여배우 대열에 끼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시선들을 벗어나고 싶었다.

▶ 네티즌들이 뽑은 전도연 최고의 연기는 '너는 내 운명'의 은하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나. '너는 내 운명'은 전도연에게 어떤 작품이었는지도 궁금하다.

- 당시 감독님이 전도연의 예쁜 모습을 다 보여주겠다고 작정을 하고 찍은 영화다. 예쁘게 꾸미고 나올 일이 잘 없었고, 예쁜 척하는 연기를 해본 적도 없는데 그렇게 찍은 작품이라 기뻤다. 지금보다 상큼하기도 하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 지금의 전도연이 20년 전의 전도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 열심히 하라고 하고 싶다. 그냥 열심히가 아니라, 사실 뭔가 목표를 향해 열심히 하는 것보다 가진 걸 즐기면서 열심히 하다보면 그 길을 가게 되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전도연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는 20대 배우들을 보면 과연 내 어떤 모습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일지 궁금하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모습일까. 그게 최고의 순간 같지만 사실은 현장에서 일을 할 때가 최고의 순간이다. 그런 순간을 즐기면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도전적인 여성 캐릭터가 부족하다면 직접 영화를 투자·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리즈 위더스푼처럼 남들이 만들지 않으면 내가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 내가 생각보다 겁이 많다. 문소리 씨처럼 싸워나가고,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나가고 뭔가 하겠다는 배우들은 정말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 최근에 눈여겨 본 작품이나 배우가 있을까.

- 샤를리즈 테론을 보면서 여배우로서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도 좋은 연기를 많이 했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멋있는 여배우의 길을 가고 있어서 부럽다. 나도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뭘 더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난 할 수 있는게 더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많은 분들이 전도연의 다음 작품이 뭘까 궁금해하는데 내가 어떤 작품을 해야 하지 생각하면서 많이 우울해 했었다. 그 때 송종희 분장 실장님이 90년대 네가 작품을 찍는 동안 기다렸던 배우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니 너도 충분히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힘이 되는 말이었다.

▶ 20년 전과 지금, 연기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하다.

- 내가 연기하면서 느끼는 게 진짜인지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보니 캐릭터가 무거워지고 작품도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전도연은 전도연이다'라는 것이 장점인지 생각하기도 한다. 연기를 하다 보면 객관화시켜서 인물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같은 사람이 돼 있다. 그게 좋은 것일지 생각한다. '전도연은 역시 연기 잘한다' 이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처럼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어떻게 하면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했던 그 때가 더 단순하고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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