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뉴스] C호텔 앞에서 '택시 김사복'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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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복 찾은 실마리 '조선호텔'과 '검정세단'

-'호텔택시' 김사복, 외신기자들과 빈번히 교류
-"검정세단 3대로 조선호텔서 영업" 증언
-힌츠페터, 방한 첫날 김사복과 조선호텔 찾아
-광주 찾은 힌츠페터 일행, 검정세단 탑승
-아들 김승필 "아버지의 용기 드러나 감사"

■ 생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FM 98.1)
■ SNS 참여 : 페이스북[www.facebook.com/981news]



◇ 김현정> 김현정의 뉴스쇼 금요일의 코너, 뉴스 속을 훅 파고듭니다. <훅!뉴스> 시간 김정훈 기자가 함께합니다. 오늘은 어제 애청자 여러분께 예고해드린 바로 그 내용을 가져오신 거죠?

◆ 김정훈> 그렇습니다. 먼저 오디오 파일부터 듣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음향] 영화 '택시운전사' 예고편 중

◇ 김현정>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이었어요.어제 영화의 실제 주인공 김사복씨의 아들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김승필씨의 인터뷰 내용을 전해드렸죠. 그런데 어제는 김승필씨의 주장을 전해드렸던 거 아닙니까? 그런데 청취자 여러분들이 그런 증거가 있느냐, 영화의 내용과 다른 것이 많다는 질문들이 들어왔어요. 김정훈 기자가 오늘 훅뉴스에서 그 증거를 가지고 오셨다고요?

◆ 김정훈> 기사를 두고 여전히 의혹이 가시지 않는 댓글들을 많이 봤는데요,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뒤 김승필씨는 트위터로 김사복씨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면서 수수께끼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죠. 그 김승필씨가 저희에게 아버지의 생전 사진 7장을 건네주었습니다.

'호텔 택시'를 영업할 당시 김사복 씨. 왼쪽 사진에서 김사복 씨는 카메라 옆에 섰고, 외신기자는 마이크를 들었다. 김사복 씨는 외국 언론, 특히 독일TV 쪽 사람들과 자주 일을 했다는 것이 김승필 씨의 설명이다. 사진(오른쪽)은 김사복 씨가 당시 촬영에 필요한 장비를 허리에 차고 손에 든 모습(사진=김승필 씨 제공)

 

'호텔 택시'를 영업할 당시 김사복 씨. 김사복 씨는 1970~80년 대, 한국을 찾은 외국 방송사들의 취재 현장에 동행해 현장을 사진으로 여러장 남겼다.(사진=김승필 씨 제공)

 

◇ 김현정> 독인인 기자 힌츠페터를 광주로 태워가던 그 무렵인가요?

◆ 김정훈> 네. 김사복씨는 1970년대에서 1984년까지 호텔택시, 그러니까 주로 호텔 투숙객들을 상대로 콜택시 영업을 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입니다. 특히 카메라와 조명장치 등을 들고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띄는데 외신 기자들과 함께 다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김승필씨의 말입니다.

[녹취]"이 사진이 히로세에요. NHK 히로세 기자.
이게 독일 기자분이죠. 이때 독일 기자분들이 촬영할 때 아버님이 찍으신 거 같아요.
아버님이 이미 독일 기자분들하고는 오랜 세월 전부터 알고 지낸 관계이고, 이게 이제 아버님이시네요. 같이 인터뷰하고 찍은 사진인거죠."

◇ 김현정> 굉장히 세련되셨어요. 인터넷 노컷뉴스를 통해서 청취자 여러분들이 사진들을 모두 보실 수 있도록 공개해 놓겠습니다. 그런데 먼저 짚고 갈 것이, 영화 속 김사복씨는 개인택시 운전사였어요. 실제로는, 김승필씨 주장은 일반 승용차 모습의 호텔택시를 몰았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껏 찾기 어려웠고요. 힌츠페터씨가 탔던 택시가 일반 자동차 모양이었는지 이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 김정훈> 힌츠페터 씨는 자신이 택시를 탔다고 밝힌 적이 없습니다. 그가 저자로 참여한 'The Kwangju Uprising'-'광주 봉기'로 번역할 수 있는 책이 있거든요. 거기서 힌츠페터는 김사복씨를 driver 즉 운전자라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보시는 것처럼, 김사복씨의 사진에 등장하는 차량들도 일반 승용차인 것이죠.

◇ 김현정> 그럼 김사복씨가 그럼 일반 택시가 아닌 호텔택시를 몰았다는 증언도 있습니까?

◆ 김정훈> 저희가 1970년대에 김사복씨와 가깝게 교류했던 두 사람을 찾았습니다. 당시 조선호텔 직원이었던 이추열씨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그때 외국 손님이나 바이어가 오면은 모시고 가고 그랬던 분이예요. 앞에 가면 차들이 대놓고 영업을 했어요. 도어맨들이 손님 불러주고… 그때 당시 한 세 명이 있었어요. (김사복씨가 세분 중 한명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김사복씨가. 제일 매너 좋았고, 굉장히 젠틀한 분이었어요. 책임감이 있고."

◇ 김현정> 조선호텔에서 일반 자가용을 가지고 영업을 하던 세분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 김사복씨였다는 건가요?

◆ 김정훈> 네. 그 차가 검정색 세단이었다고 합니다.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김사복씨는 택시가 아닌 최고급 검정색 세단을 모두 3대나 소유하고 영업했다고 하네요. 실제로 힌츠페터 기자 일행이 광주에 타고 갔던 차도 연두색 택시가 아니고 검정색 세단이었습니다.

◇ 김현정> 이걸 증명하는 사진 자료가 있습니까?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 속 김사복 씨 차량 (사진='푸른눈의 목격자' 화면 캡처)

 

김사복 씨와 그가 소유한 차량 사진들. 모두 검정 세단이다. 왼쪽 사진에 등장하는 외국인은 김사복 씨가 남긴 사진에 여러번 등장한다. 김승필 씨는 이 인물이 다른 사진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아 외신기자라고 설명했다.(사진=김승필 씨 제공)

 

◆ 김정훈> 힌츠페터가 직접 촬영했던 다큐멘터리, 그곳에 등장하는 차량이 바로 검정색 세단이었던 거죠.

◇ 김현정> 이제 퍼즐이 맞춰지네요. 조선호텔에서 검정 세단을 가지고 택시 같은 영업을 했던 김사복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것은 아들도 증언을 하고 알고 있는 지인도 있고 사진도 있고. 그리고 힌츠페터씨의 책과 다큐멘터리를 보면 역시 택시를 타고 갔다는 얘기는 없고. 검정색 세단을 타고 갔는 얘기가 있는 거네요.

◇ 김현정> 그렇습니다. 다시 이추열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분에게 김승필씨로부터 받은 사진을 전송해 보여드렸거든요. 더욱 확신을 하게 된다 하는데, 들어보시죠.

조선호텔 앞 김사복 씨. (사진=김승필 씨 제공)

 

[녹취]"첫째 김사복이란 이름이 다른 사람 없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가지고 있는 사진에 ***씨가 조선호텔에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이예요. 이거 아니라고 하면 그 사람들 진짜 나쁜 사람들이에요. 왜냐면 사진이 모든 게 맞는데 그건 말이 안되는 거지."

◇ 김현정> 모두 자신이 잘 알던 사람이라는 거예요.

◆ 김정훈> 또다른 증인도 볼까요? 역시 당시 조선호텔 직원이었던 이명구씨의 증언입니다.

[녹취]"그 당시 김사복씨는 한 사람이었고. 외신기자가 조선호텔에 많이 투숙해서… 영어도 하고 일본어도 하고. (외국인들하고) 말이 통하니까."

◇ 김현정> 조선호텔 직원이 한 사람 더 나타났어요. 이명구씨. 그 당시 조선호텔에서 그런 식으로 영업하는 사람 중 김사복이라는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는 거죠?

◆ 김정훈> 네. 그런데 조선호텔이라는 키워드에도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김사복씨가 이 호텔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며 영업했다는 게 공통된 증언입니다. 그때 조선호텔이라고 하면 외신기자들의 집합소였습니다. 광주 취재를 위해 한국에 도착한 힌츠페터가 곧바로 향해 하루를 묵은 곳이 바로 이 조선호텔입니다.

◇ 김현정> 조선호텔에서 검정 세단을 가지고 김사복씨가 영업을 했다는 것은 증명이
되는데, 힌츠페터 기자가 묵었던 곳이 조선호텔이었다는 걸 이걸 증명할 수 있나요?

◆ 김정훈> 한국에 도착한 첫날 향했던 곳이 바로 조선호텔인데요. 힌츠페터의 책 'The Kwangju Uprising'의 관련 대목을 나레이션으로 들어보시죠.

[나레이션]"그날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김포에서 세관원들은 필름과 음향장비를 두고 시간을 끌며 연거푸 검색하던 때와는 달랐다. 밖에는 김사복이 우리를 기다렸다. 서로 인사한 뒤 우리는 서울 도심의 조선호텔로 내달렸다. 그곳을 향해 가며 김사복은 현 상황을 브리핑해주었다."

◇ 김현정> 조선호텔에 맞군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택시운전사가 술수를 써서 힌츠페터를 손님으로 태우거든요. 그게 아니었던 거네요.

◆ 김정훈> 몇가지를 더 말씀드리면, 김사복씨가 개인택시 운전을 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죠. 가족관계도 슬하에 이남을 뒀고 1980년에는 모두 20대였습니다.

◇ 김현정> 영화 속에는 어린 딸로 나오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고요.

◆ 김정훈> 실제 살림살이도 어렵지는 않아서 차량 3대를 가지고 있었고요. 무엇보다 영화에서는 김사복이라는 이름이 가명처럼 묘사되는데 실명이었다는 겁니다.

◇ 김현정> 영화에서 각색이 됐다는 얘기죠. 그렇게 37년 동안 역사에 묻혀서, 또는 잘못 알려진 채로 김사복씨와 그 가족들은 살아온 거네요.

◆ 김정훈> 다만, 영화와 실제가 일치하는 대목은 김사복씨가 광주의 진실을 전하고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죠. 힌츠페터가 김사복씨를 책에서 언급한 대목을 나레이션으로 들어보시겠습니다.

[나레이션]"한시간 정도를 달린 후에 우리는 우회 표시를 맞닥뜨렸다. 김사복은 이를 무시한 채 그대로 광주를 향해 내달렸다. 우리는 그렇게 쉬지 않고 나아갔다."
"광주에 이르는 마지막 몇마일의 길이 가장 험난했다. 계엄사령관이 외신기자들의 광주행을 분명히 막아서려 했다.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김사복은 시골 농부에게 물었고 우리는 다시 길을 찾아냈다"

◇ 김현정> 김사복씨가 힌츠페터씨를 광주로, 수동적으로 싣고 갔다 온 것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 김정훈> 그렇기 때문에 김사복씨는 광주에 대한 기억을 울분 속에 떠올렸다고 하는데요, 아들 김승필씨는 아버지의 기억을 이렇게 전합니다.

[녹취]"광주 다녀오시고 첫 마디가 같은 민족끼리 그렇게 죽일 수 있느냐 하셨어요. 대검 꽂아서 사람 찔러 죽인다든지, 개머리판으로 말도 못하게…"

◇ 김현정> 그 참혹한 장면을 목격하고 답답해 하다가 결국 4년 후엔 1984년에 세상을 떠났던 거죠. 그리고 그 아들도 아버지의 경험을 잊고 있다가 이번 영화로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 것이고요. 어제 저희의 단독 보도로 그 김사복씨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데, 지금 심경은 어떨까요?

김승필 씨

 

◆ 김정훈> 아버지, 김사복씨에 대한 이야기가 정확하게 사실대로 알려지게 돼 기쁘다고 하는데요, 심경을 담아봤습니다.

[녹취]"그냥 성실하게 일을 수행하신 아버님이 그 안(광주)에 들어가셔서 소신이 생기고, 용기로 작용한 것이고, 그것이 알려지게 된 것이죠. 그런 작은 일들이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많이 칭찬하시니까 감사하고요. 이제 좀 뭔가 세상이 옳게 돌아가는 느낌도 들고…"

◇ 김현정> 힌츠페터 기자가 광주의 실상을 제대로 전한 유일한 기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힌츠페터를 태운 김사복씨가 험난한 상황을 뚫고 광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여기서부터는 못 가요' 했다면 묻혀질 뻔했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거 아니냐고 하기에는 큰 영웅인 겁니다.

◆ 김정훈> '아버지는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다만 조그만 용기를 냈을 뿐'이라고 김승필씨는 말하고 있긴 합니다. 그런 김승필씨의 마지막 바람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옛날의 동지 힌츠페터 곁에 모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김승필씨의 소망을 마지막으로 들어보시죠.

[녹취]"피터 아저씨 옆에 모시기만 하면 아버님께 "아버님 제 일 다했죠?" 이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김현정> 5.18묘역은 5.18 관련자들이 쉴 수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그곳에 힌츠페터씨 옆에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네요. '김현정의 뉴스쇼'가 확인한 작은 영웅, 김사복씨에 대한 이야기, 훅뉴스에서 다뤄봤습니다. 김정훈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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