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단죄 받은 김기춘의 '블랙리스트'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질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법의 엄한 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가 27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한 관련자 7명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기춘 전 실장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김 전 실장을 블랙리스트 파문의 핵심 주범으로 확인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고 실세로서 '기춘 대원군', '왕실장'으로 불렸다가 '법률 미꾸라지'로까지 추락한 김 전 실장이 끝내 법망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철창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이행을 지시하고 승인했으며 독려했다고 지적했다. 또 김 전 실장이 줄곧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회피했고 국회 위증으로 국민의 기대를 외면했다고도 비판했다.

김 전 실장은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든 일도 없고 본 일도 없으며,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해왔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오후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재판부는 조윤선 전 장관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석방했다.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무죄이지만 국회 위증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결과다.

조 전 장관은 그동안 '블랙리스트 주범'이라는 말은 참을 수 없다며 눈물로 무죄를 호소했었다.

이날 1심 재판부의 판결 의미는 무엇보다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데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부터 만들어진 배제 대상자가 무려 1만여 명으로까지 늘어난 블랙리스트가 실재했다는 확인인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차별과 배제'의 블랙리스트는 유신 독재의 망령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의 5·16 장학회 장학생으로 1970년대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한 김기춘 전 실장이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블랙리스트 파문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재판부가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를 김 전 실장 측이 내세운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직권남용에 의한 사법적 처벌 대상이라고 판단한 것도 이번 판결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점이다.

재판부는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지원에 차별을 두는 것은 어떤 명목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 직권남용이자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의 위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솎아내는 블랙리스트 작업이 은밀하고 집요하게 그것도 장기간 실행에 옮겨졌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줬던 블랙리스트 파문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1심 판결이 끝났을 뿐이고 블랙리스트 재판은 법리적 판단이 중요한 사건인 만큼 앞으로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치면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조만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구성되는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도 재판 과정에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기춘 전 실장 측은 이날 "부당한 판결"이라고 주장하며 항소 방침을 밝혔다.

다만 이날 블랙리스트 1심 판결을 정치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여야 정치권을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증세(增稅)와 감세(減稅)를 둘러싸고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블랙리스트 파문은 '네 편'과 '내 편'을 나누는 차별과 배제의 이분법에 기초한다.

여야 정치권의 대립이 아무리 격화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어둡고 음습한 블랙리스트가 꿈틀거려서는 안 된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