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과 훈련 파트너, 치열했던 그 남자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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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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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원의 깨톡]삼순 데플림픽 유도 대표팀 ‘숨은 일꾼’ 김희동 수화통역사

2017 삼순 데플림픽에 출전한 유도 선수단은 선수 8명 전원이 최소 1개 이상의 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길에 올랐다. 유도 대표팀의 김희동 수화통역사(윗줄 오른쪽 두 번째)는 유도 대표팀의 뛰어난 성적의 숨은 공신이다.(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전 세계 청각장애인(DEAF)의 올림픽(OLYMPIC)인 데플림픽(DEAFLYMPICS)의 23번째 하계 대회가 터키 삼순에서 열립니다. 대한민국 선수단과 함께 삼순을 다니며 미처 기사에 싣지 못한 소소한 이야기를 [2017 삼순 데플림픽의 깨알 같은 이야기. 오해원의 깨톡(TALK)]을 통해 전달합니다.
터키 삼순에서 진행 중인 2017 삼순 데플림픽에 출전한 유도 대표팀은 8명 전원이 목에 메달을 걸고 한국 선수단 가운데 가장 먼저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대회 3일 차에 카타 종목에서 한명진(31)과 최선희(23)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한명진은 남자 60kg 동메달도 챙겼습니다. 4일 차에는 남자 81kg 김민석(22.포항시청)이 ‘금빛 메치기’에 성공했고, 여자 70kg 홍은미(33.안산시청)와 남자 90kg 양정무(30)는 은메달을 가져왔습니다.

유도 일정의 마지막 날에도 남자 단체전 금메달과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추가하며 메달이 없던 남자 66kg 황현(19)과 73kg 변진섭(32), 여자 57kg 이진희(25)까지 모든 선수가 메달을 손에 넣었습니다.

모두가 웃으며 대회를 마칠 수 있었던 데는 이용덕 감독과 박노석 코치, 원재연 코치의 지도와 선수 8명의 쉴 새 없는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뒤에서 묵묵히 일했던 김희동(27) 수화통역사 역시 유도 선수단이 거둔 값진 성적의 숨은 공신입니다.

데플림픽 개막을 앞두고 경기도 이천 훈련원에서 만난 김희동 수화통역사의 첫 모습은 본업인 수화통역이 아닌 선수들의 훈련 파트너였습니다. 변진섭, 한명진과 같은 유도장을 다닌 그의 유도 실력은 사실 초보 수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직접 선수의 훈련 파트너를 자처하며 마땅히 훈련 대상이 없는 청각장애인 유도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도움을 줬습니다.

본업인 수화통역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매트 위에 쓰러져 있다가도 감독, 선수의 소통이 필요한 순간에는 어느새 달려와 수화 통역사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에 선수들이 원하는 여러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뛰어다니는 모습은 여느 선수단의 주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유도장에서 김희동 수화통역사는 수화통역은 기본이고, 훈련 파트너에 주무 역할까지 ‘1인 3역’의 살림꾼이었습니다.

2017 삼순 데플림픽 유도 경기가 열리는 아타튀르크 스포츠홀에서 만난 김희동 수화통역사의 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1인3역’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감독, 코치와 선수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경기를 전후해 선수들의 여러 민원을 해결하느라 좀처럼 쉴 새가 없었습니다.

경기도 이천훈련원에서 만난 김희동 수화통역사는 자신의 본분인 통역 외에도 직접 유도복을 입고 선수의 훈련 파트너로 나서는 등 여러 역할을 맡아 분주히 일하는 모습이었다. 오해원기자

 

◇ 인생을 바꾼 수화, 너는 내 운명

2009년부터 수화를 배운 김희동 씨는 청주시 수화통역센터에서 한명진과 함께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녔던 대학(나사렛대)이 장애특성화학교라 농아인을 많이 마주치며 자연스럽게 수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김 씨는 “9년째 수화통역을 하고 있다. 아내 역시 수화통역사”라고 소개했습니다. 김희동 씨의 아내는 변진섭과 충북수화통역센터 지원본부에서 근무 중입니다.

2년 전 아시아태평양농아인경기대회를 통해 국가대표 선수단의 수화통역을 시작한 김희동 씨는 “훈련원에서 같이 훈련할 때는 기술 이름을 수화로 표현하는 것이 힘들어 입모양이나 큰 목소리로 하거나 직접 몸으로 시범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힘도 들었지만 우리 선수들이 대회에서 메달을 따니까 나도 기쁨과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힘들어도 선수들과 함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활짝 웃었습니다.

이용덕 감독도 “아주 성실하고 선수들과 친밀감이 있다. 책임감도 강한 친구”라며 “오기 전부터 선수들과 아는 사이였는데 유도까지 했다고 하니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대회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좋았지만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훈련이나 시합을 하다 보면 예민해지는 선수들과 완벽한 소통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수화통역사로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선수들이 짜증 섞인 수화를 하기도 한다”고 소개한 김희동 씨는 “선수들이 힘든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는 내 실수다. 수화통역사로서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수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농아인과 소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김희동 씨는 수화가 인연이 되어 가정을 꾸렸고, 또 국가대표 선수단의 국위선양에도 보탬이 됐습니다. 과연 그에게 수화는 어떤 의미일까요.

김희동 씨는 “지난해부터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제는 수화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라는 의미”라며 “많은 이들이 조금 더 수화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힘주어 당부했습니다.
2017 삼순 데플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한명진은 자신의 직장 동료이자 대표팀의 수화를 맡은 김희동 수화통역사에게 메달을 걸어주며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다.(사진=김희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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