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최저임금 전선, '갑' 사라진 자리 '을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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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횡포 해결과 은퇴 후 소득보전 정책 등 구조 문제에서 접근해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자료사진)

 

최저임금이 지난 주말 여러 논의와 진통 끝에 역대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753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현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최소한의 삶도 지키기 어려운 노동 현실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이치고 순리입니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놓고 벌이는 논의이기에 노사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갈등 역시 첨예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하지만 쉽게 넘길 수 없는 사실은, 사용자와 노동자들의 '임금전쟁' 최전선에 늘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와 거기서 일하고 있는 우리 친구들만 보인다는 점입니다.

은퇴 후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해오던 동네 사장님은 얼마 전 폐업을 결정했습니다. 연일 터지고 있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甲)질에 매출은 이미 반토막이 난데다 최저임금까지 올라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 합니다. 4명의 직원과 함께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지금도 하루 35만원 남짓의 인건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단순계산으로도 월 700만 원의 돈이 인건비로 나가는 상황입니다.

인건비가 오롯이 가맹점 주들의 몫인 상황에서 본사에 상납하는 수수료가 낮춰지지 않는 한, 이들은 인건비 절약을 위해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치킨 값이 좀 오르는 정도의 문제지만 이들에게 1000원은 폐업 여부가 걸린 생존의 문제입니다.

"본사는 최저임금이 오른 데 따른 자기네들 손실을 가맹점을 통해 보전하겠죠. 닭이든 수수료든 가격을 올릴 거예요. 이런 불합리한 구조가 개선되기 전에 최저임금이 오르니 폐업밖에는 답이 없어요.”

불공정한 프렌차이즈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풍파는 결국 월 200만 원 남짓한 돈을 쥐는 가맹점 주들의 몫입니다. 또 그로인해 줄어드는 일자리와 노동강도의 상승은 고스란히 주변 친구들의 몫으로 옮겨갑니다.

당장 주변 친구들은 "취업 걱정에 앞서 아르바이트 일자리마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 아니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들에 대해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것을 보면 '그깟 아르바이트 자리'라는 생각이 정책 저변에 깔려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건비 보전 등의 영향으로 올라갈 물가는 알바 노동자, 더 나아가 이 땅의 모든 소비자에게 전가됩니다. 서로가 서로의 생존을 위해 속된 말로 을(乙)이 병(丙)을 후려치는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은 언제까지 계속 될까요. "불공정한 거래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이뤄진 최저임금상승은 결국 패배자들의 싸움이며 공멸"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는 이유입니다.

비단 프랜차이즈 가맹점 주 뿐만 아닙니다. 영세 자영업자 대부분이 비슷한 사정입니다. 정부가 영세업자를 위한 대책으로 3조원을 풀어 '4대 보험료 지원' 등 제반대책을 약속했지만 영세소상공인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편의점, 음식점 등 영세업자가 고용한 노동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에 월 100만 원 남짓한 돈을 받다보니 4대 보험 가입을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 작은 가게를 연 우리들 아버지와 거기서 일하는 친구들만 볼 게 아니라 이 모든 논의에서 사라진 갑(甲)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불공정한 거래구조, 복잡한 유통구조 속에 올라가는 유통비, 그리고 임차인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건물주의 횡포 같은 것 말입니다. 또 자영업이 아니면 은퇴 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취약한 복지 제도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합니다.

어쩌면 새로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언론이 구조의 문제를 애써 외면한 채 그저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사업체들이 쓰러지게 생겼다'고 연일 대서특필하다보니 가려진 이야기일 뿐입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치킨집 사장님은 폐업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습니다. 사장님은 떠나지만 은퇴 후 대안이 없는 우리들 아버지는 동네 치킨집이 위치한 그 자리에 또 다른 치킨집을 열지도 모릅니다. 최저임금 그 자체에만 갇혀 있을 게 아니라 갑이 지배하는 경제생태계와 복지 전반, 그러니까 을과 병을 포함해 전체 구조를 들여다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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