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박근혜가 만약 '남자'였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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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깨기 위해 또 다른 지배자로서 약자 위에 군림해도 되는가"

(사진='까칠남녀'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 26일 밤 전파를 탄 EBS 1TV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에서는 '젠더 관점으로 본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설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를 풍자한 작가 이구영의 '더러운 잠'이 다시 한 번 소환됐다. 이 작품은 지난 1월 공개된 뒤 '표현의 자유'와 '여성 비하·혐오' 사이에서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이날 방송에서 작가 은하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이 아니었다면 저것('더러운 잠')을 내놨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박 전 대통령이 못한 것들, 무능한 것들을 더 많이 지목할 수도 있었는데, (여성성이 부각됨으로써)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은하선은 "굉장히 여러 가지 의도가 저 그림에 숨겨져 있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봤을 때는 '여자의 나체를 저렇게 벗겨놨어?'라고 먼저 인식하게 된다"며 "그렇다면 분명히 예술가로서도 자신이 표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철학자 이현재는 당시 논란의 시발점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처음 뉴스에서 저 작품에 초점을 맞췄을 때는 정당정치의 역동성에 휘말리는 형국에서 문제가 됐다.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처음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저 작품이 문제가 됐다기 보다는, 특정 정치인을 몰아붙이거나 변호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굉장히 불거졌다. 그 비판의 주안점도 달랐다. '왜 창녀의 몸, 창녀의 나체 그림이 대통령을 비유하는 데 사용됐는가'에서 (논란이) 주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논란의) 포인트도 '왜 퇴폐인가' '왜 대통령을 모욕하는가'에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더러운' 잠의 모티브가 된 세 작품에 대해 "모두 여성을 육체로 표현했다"는 공통점을 지목하며 말을 이었다.

"'여성성=육체·나체'로 표현한 작품들인 것이다. 첫 번째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1510)는 신화적 여성의 이상적인 육체를 표현했다. 그리고 디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1537)는 현실 귀족 부인의 고상한 육체를, 마지막으로 마네의 '올랭피아'(1863)는 매춘부의 육체를 그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뒷부분('올랭피아')에 초점을 맞췄다. '어떻게 대통령을 매춘부의 몸으로 나타내느냐'에 퇴폐성이 있다며 많이 분개한 것이다."

이현재는 "여기서 그냥 나체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체도 어떻게 그려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며 "'더러운 잠'의 여성이 어떻게 그려졌는지를 보면, 굉장히 나른하고 수동적이고 무력한 여성의 몸, 그리고 하녀에 의해 모셔지는 몸 등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와 부폐가 부각되기 이전에 여성성이 확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 그림을 봤을 때 여성성을 수동적이고 무력한 나체 정도로 각인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기생충박사 서민은 "패러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권력에 대한 풍자여야 한다. 그런데 저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여성성을 따와서 그것을 짖밟은 것"이라고 평했다.

특히 "예를 들어 장애인 대통령이 있다고 치자. 그때 장애만을 따와서 비하해 놓고 예술이라고 우기면 굉장히 불편하지 않나"라며 "그것이 예술일 수 있나. 여성을 벗기는 것은 금기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 "여성 비하는 금기를 깨는 행위가 아니라, 금기를 즐기는 행위"

(사진='까칠남녀' 방송 화면 갈무리)

 

반면 시사평론가 정영진은 "예술이라는 것은 늘 어떤 시대든 금기에 대한 도전이어야 한다. 작가(이구영)도 '금기에 대한 도전이며 권력자들의 추한 민낯을 드러내기 위해 나체를 택했다'고 얘기했다"며 "굳이 할 필요가 없는데도 하는 것이 예술이다. 그러한 금기를 깨면서 예술가들이 상식과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에게 불쾌감을 주면 예술이 아니라는 말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밀레가 그린 '이삭 줍는 여인들'(1857)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불편해 하고 불쾌해 했다. '아름다운 그림도 많은데, 왜 하필 노동자들이 힘들게 이삭 줍는 거나 그리고 있냐'고 말이다. 당시로서는 불편하거나 불쾌하더라도 예술가들은 그런 것들을 다룸으로써 우리의 금기를 깨주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에 철학자 이현재는 "금기를 깨는 기능이 예술가들에게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서도 "그런데 저 그림('더러운 잠')이 하나의 금기를 깨기 위해 또 다른 지배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지는 않나를 한 번 생각해 보자"고 역설했다.

"('더러운 잠'은) 정권의 부폐를 두 사람(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게 돌리고 있다. 사실 국정농단은 저 두 사람뿐 아니라 여러 사법·경제·정치 카르텔이 함께 벌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저 두 사람에게 화살이 갔고, 그들의 여성성을 두드러지게 이야기함으로써, 여성성을 매개로 하지 않으면 저 그림의 풍자성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게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바로 그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표현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비판의 자유'도 있다는 것"이라며 "여성 비하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금기를 깨는 행위가 아니라, 금기를 즐기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여성계에서 말하려는 것은 '우리의 말을 윤리적 강령으로 여기고 모두가 따르라'는 파시즘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로 그러한 주장을 했다면, 그 표현의 자유를 비판할 수 있는 것도 표현의 자유다. 저 작품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비판을 한 것이다."

특히 이현재는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으로 인해 억압 받으면서) 오랫동안 입을 닫고 있던 예술가가 입을 열었을 때는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모두 고민한 상태에서, 가장 예민한 자가 가질 수 있는 부분을 예술로 보여줄 수 있었어야 한다"며 "사실 (해당 작가가 권력자 비판이라는) 하나에만 그동안 천착해 왔고 요즘 제기되는 여성혐오 문제에는 예민하지 못했다는 점에 실망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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