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디어에 나오는 여성은 엄마나 젊은 여자, 악녀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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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과 특징 한정적 노출, 각종 권고 사항 있지만 갈 길 요원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 2부 '#GO_미디어_내_성평등'이 열렸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무려 '2017년'에 아직도 성차별, 성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게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별 임금 격차나 기업 내 고위직 비율 등 각종 지표는 이 고질적인 문제가 여전히 실재함을 보여준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등장하지만 아주 일부분의 특징만 부각되는 경우가 잦으며, 나이를 먹으면 더 빨리 뒤로 밀려난다.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 2부 '#GO_미디어_내_성평등'이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도종환 의원실, 국회 시민정치포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법조인협회 공익인권센터,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한국PD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자리였다.

◇ 가사는 여성 몫, 외모지상주의 등 낡은 관점 재생산하는 미디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이수연 선임연구위원은 '방송에서의 성차별-방송산업 성별구조와 방송내용' 발제에서 '양성평등'은 재원과 권력의 동등한 배분, 동등한 존중과 인정 두 축을 바탕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남녀가 동등하게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를 만들자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비쳐지는 여성의 모습은 여전히 '부분적'이고 '부수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드라마, 예능에서도 이런 경향이 이어졌다. 이 위원은 지난해 시민단체 서울YWCA의 방송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여성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지 소개했다.

KBS1 드라마 '별난가족'에서는 아들이 퇴근 후 주방에 들어가자 "장가가서 니 마누라에게 잘 보이려 예행연습하는 거니?'라는 장면이 나오고, MBC '워킹맘 육아대디'에서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어머니가 아들에게 "사내새끼가 무슨 병간호를 해. 며느리가 시어머니 수발하는 건 당연한데"라고 일갈한다. 가사와 육아, 돌봄이 오로지 여성에게만 부과된 의무처럼 묘사한 것이다.

외모지상주의와 여성비하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SBS '내 사위의 여자'에서는 "못생긴 여자가 복스럽게 먹는 건 별론데, 이쁜 여자가 복스럽게 먹는 건 너무 좋아요"라는 대사가, MBC '운빨로맨스'에서는 업무능력과 성격과 무관하게 예쁜 여성을 '여신'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KBS1 '내 마음의 꽃비'에서는 '도둑년의 애미', '거지 같은 기집애', '불여시' 등 여성비하적 표현이 난무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는 남성, 여성 출연자의 노출 빈도부터 2배 차이가 났다. 지상파·종편·케이블의 32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출연자 성별은 남성이 66.3%로 여성 33.7%의 2배였다. 연령별로 보면 남성은 30대(33.7%)가 가장 많았고 40대(27.8%), 20대(15.5%) 순이었는데 여성은 20대(24.3%)와 30대(24.3%)가 동률이었고 40대가 되면 18.9%로 떨어졌다.

연예·오락물에서는 △외모지상주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비존중 △성 역할 강조 등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KBS2 '개그콘서트'의 '가족 같은' 코너에서는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예쁜 여성인 것으로 밝혀지자 모든 것을 이해하는 아버지가 나왔고, '납량특집' 코너에서는 여행하는 남녀 중 여성은 1박을 거부했는데 남성이 받아들이지 않는 설정이 나타났다. 여성의 거절은 진정한 거절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또한 tvN 인기 예능 '삼시세끼-어촌 편'에서는 차승원, 유해진이 모두 남성이었으나 요리를 잘한다는 이유로 차승원을 '엄마'로, 밖에서 낚시하는 유해진을 '아빠'로 표현하기도 했다. 차승원은 '차줌마'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 위원은 이같은 성 차별 해소를 위해서는 현재 남성에 편중된 방송조직의 성별구조를 개선하고 방송인들부터 일-가정 양립을 실현하며 성차별·성희롱·성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별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프로그램 제작 △시청자에게 양성평등한 세상의 비전 제시 △남녀를 균등하게 출연시켜 대안적 성 역할 제시 등을 제언했다.

◇ 여성의 역할 단순화하지 말고 다양한 모습 조명하길

방송인 곽현화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개그우먼, 배우, 가수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온 방송인 곽현화는 제작환경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담을 밝혔다. 데뷔 초부터 섹시함이 강조된 건강미인 캐릭터였던 그는,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섹시한 캐릭터'를 정말 '스스로 선택'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곽현화는 "건강미를 보여준다고 해서 운동하는 프로그램에 갔다. 이런 동작을 하면 어떤 부위에 효과가 있다고 설명해도, 카메라의 시선은 달랐다. 엉덩이 등 특정 신체부위를 강조해서 보여줬다"며 "결국 '쟤는 저런 걸 너무 과도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더라. 하지만 방송에 계속 출연하기 위해서는 요구하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곽현화는 자신 역시 뚱뚱하거나 못생긴 외모를 개그 소재로 하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했었다며, '비하'가 아닌 방식으로 풀어낸 '출산드라' 캐릭터에 주목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출산드라는 자신의 뚱뚱함을 주체적이고 긍정적이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많이 먹고 뚱뚱하고 못생긴 것이 태만하거나 나빠서가 아니라는 거다. '이게 그냥 난데 어때'라는 태도로 '주체'로서 소화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있더라"라고 부연했다.

이어, "요즘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상이 사회에 많이 비쳐지는 만큼, (방송에서도) 단순히 엄마, 젊은 여자, 악녀 이런 식으로만 (여성을) 묶거나 대상화시키지 말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안적 모습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그럼 저희도 '이런 것도 선택할 수 있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그램도) 충분히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전했다.

◇ 제도는 있지만… 결국 '현장'부터 바뀌어야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양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발표했다. 방송제작 현장에서 준수해야 할 사항으로 △주제 선정에서부터 양성평등 적극 반영 △남성과 여성 모두를 균형 있게 대표할 수 있어야 할 것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고 양성의 다양한 삶 보여줄 것 △성폭력·가정폭력 정당화 및 선정적 접근 지양 △성차별적 언어 사용에 민감할 것 등 5가지를 제시했다.

국내 방송사들도 제작가이드라인과 방송강령 등을 통해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도가 없어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결국 '현장에서의 변화'가 필요한 상황.

KBS 김민정 PD는 "방송·미디어 산업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사회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면서도 "성평등한 사회를 하루라도 빨리 만들기 위해 방송이 한 걸음씩 먼저 나갈 수도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률을 담보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왜곡을 더 왜곡시키는 프로그램 제작에만 함몰돼선 안 될 것"이라며 "일상의 차별과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포착하고 반성하는 예민한 감수성을 견지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슬아 사무국장은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방송 유관단체에 단 한 명의 여성도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을 50%는 할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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