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향한 '평양 원정', 그 6일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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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으로 뒤덮인 평양, 유일하게 빛을 받는 김정일·김정은 초상화

2015년 새로 지어진 평양 순안국제공항. 국제공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다. 활주로에도 고려항공 비행기 5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입국도 출국도 쉽지 않은 공항이다. (평양(북한)=공동취재단)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는 바로 북한이다. 대한민국 최북단에서 폭 4km의 비무장지대를 지나면 바로 북한의 국경이 시작된다. 하지만 북한은 가장 먼 나라이기도 하다. 분단국가인 탓에 가까운 거리에 인접해 있지만 왕래가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2019 프랑스 월드컵 출전권을 노리는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역시 힘들게 북한의 땅을 밟았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예선전을 치르기 위해 북한 평양으로 이동했다. 직항 비행기가 없어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야하는 힘든 일정이었다. 취재진 역시 선수단과 같은 방식으로 북한으로 향했다.

베이징에서 하루 휴식을 취하고 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2015년 새로 지어진 공항은 평소 생각하고 있던 북한의 이미지를 뒤집을 만큼 깨끗했다. 공항 직원은 환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러나 경계심도 가득했다. 짐을 모두 꺼내고 취재를 위해 챙겨온 노트북 검사까지 모두 마치고서야 공항을 나설 수 있었다.

평양 시내에는 예상외로 고층빌딩이 즐비했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황폐한 농토가 펼쳐졌다. 고층빌딩 역시 균열의 흔적이 보일정도로 허술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평양(북한)=공동취재단)

 

별도의 환영행사는 없었다.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사람들만이 취재진을 맞이했다. 곧바로 대회기간 머물 양각도 국제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호텔로 가는 동안 버스는 창안거리, 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북한이 자랑하는 시내를 지나쳤다. 민화협 관계자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평양 시내를 자랑하기 바빴다.

그러나 대표 거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황폐한 농토가 대부분이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밝지 않았다. 균열이 간 고층건물도 곳곳에 보였다. 만수대에 있는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만이 가장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인터넷은 우려와 달리 원활하게 사용 가능했다. 구글, 페이스북 등 여러 사이트를 접속하는 데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민화협 관계자들은 취재진이 자판을 두드리면 옆에서 지켜보기 바빴다. 혹여나 북한에 안좋은 내용이 포함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였다. 카메라로 바깥 풍경을 찍어도 어떤 용도로 쓸 것인지 물어보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평양 시내에 있는 혁신역. 역명 앞에 '지'라는 표시가 지하철역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세련된 복장을 하고 있다. (평양(북한)=공동취재단)

 

민화협 사람들은 북한의 좋은 면만 보여주기 위해 취재진의 동선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북한 주민과의 접촉도 허용치 않았다. 버스 운전기사도 민화협 관계자와 버스 노선을 설정해 움직였다.

대화에도 신중을 기해야 했다. 북한, 남조선이라는 단어는 사용해선 안됐다. 서로를 남측과 북측으로 칭해 불러야 했다. 실수로 한국, 북한 등의 표현이 나오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 밑에서는 담배도 피우면 안됐다. 사진을 찍더라도 초상화가 카메라 가운데 오게끔 해서 찍어야 했다.

평양의 저녁은 암흑 그 자체였다. 한국의 화려한 야경과는 상반되는 풍경이 펼쳐졌다. 민화협 관계자는 "전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아낄 땐 아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김정일, 김정은의 초상화가 걸린 곳은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전력을 아끼더라도 초상화에 불이 꺼지는 일은 없었다.

◇ 한민족? 김정일경기장에서는 '남남'

2018 아시아축구연맹 여자아시안컵 예선전이 열린 김일성경기장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걸려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평양(북한)=사진공동취재단)

 

김정일경기장은 북한이 자랑하는 최고의 축구 경기장이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에 지하철역도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천연잔디가 아닌 인조잔디로 그라운드에 깔려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쉽지만 상태는 훌륭했다.

북한은 이번 아시안컵 예선을 발판삼아 계속해서 국제대회를 유치할 계획을 세웠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북한이 10월 열리는 AFC 19세 이하(U-19) 챔피언십 예선도 유치하려 한다. 때문에 대회 진행과 관련한 AFC의 요청에 협조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경기장에서는 AFC 규정에 맞추려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인공기, AFC 깃발과 함께 태극기도 게양됐다. 애국가 역시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경기 운영에서는 적잖은 허점을 드러냈다. 선발출전명단과 경기 기록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 정보를 알려주는 북측 인사도 없었다. 한국 취재진과 북한 선수들의 접촉도 원천봉쇄 했다.

7일 오후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후반 한국 장슬기가 동점골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북한 응원단은 이 모습을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평양(북한)=사진공동취재단)

 

한민족이라는 말도 김일성경기장 안에서는 의미 없게 다가왔다. 5일 열린 한국과 인도의 경기에는 2500명의 북한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지만 대부분 인도 응원 일색이었다. 한국이 골을 넣어도 환호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인도가 공세를 취하면 박수가 쏟아졌다. 한국에 대한 적대심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응원이었다.

이러한 응원은 남북전이 열린 7일 절정에 달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북한의 만원 관중은 한국에 일방적인 야유를 쏟아냈다. 전반 5분 양 팀 선수들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자 야유의 강도는 더 거세졌다. 경기가 1-1로 끝나자 응원단은 침묵에 빠졌다. 선수들 역시 고개를 푹 숙인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북한을 떠나는 일도 쉽지 않았다. 11일 오전 11시20분 비행기로 중국 선양으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비행기는 아무런 설명 없이 오후 4시30분으로 연기됐다. 이유를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사정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마저도 또 연기돼 5시가 넘어서야 평양을 떠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압록강을 넘을 때쯤에는 "손님 여러분, 저희는 지금 조·중(조선-중국) 국경선인 압록강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저 압록강의 푸른 물결은 오들도 조국 광복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의 불멸의 혁명 업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라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비행기의 모니터에는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모습이 계속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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