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병우의 미소와 덫에 걸린 검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영장실질심사를 마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 한마디를 던지고 차량에 올라타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흘렀다. 기자들에게 레이저를 쏘던 그였다. 사실 수고 많았다는 말도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정말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가' 하는 안도의 독백이었다.

이렇게 해서 국정농단 사건 수사는 종결을 보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모두가 구속됐지만 우 전 수석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가히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혀를 내두를 '법꾸라지'라 칭할 만도 하다.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는게 영장기각 핵심 사유다. 지난 2월 특검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을 때와 비슷한 맥락이다.

영장전담판사가 국민 법 감정과 괴리된 결정을 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다시 영장을 청구한다면 100% 발부될 것"이라고 한 박영수 특검은 법률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속영장이 두 번씩이나 기각되고 취지도 비슷하다면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고 밖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법원 청사의 기둥이 무너질 정도로 비판 여론이 거셀지라도 판사는 법 논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핵심 혐의인 직권남용죄의 법리가 아무리 까다롭다고 해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이 혐의로만 구속됐다. 더욱이 그에게는 혐의가 8가지나 적용됐다. 한가지 만이라도 제대로 수사했다면 영장이 기각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부실수사의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청와대 압수수색이 아닌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넘겨받는 등 증거를 제대로 수집한 적이 없다. 혐의 사실에는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도 배제됐고 업무상 횡령 부분도 빠졌다. 결국 50여일간 요란을 떨고도 특검이 수사한 내용에 위증죄 등 한두개 혐의만 덧대어 영장을 청구하는 선에 그쳤다.


이미 지난 해부터 보여온 검찰의 태도를 보면 기각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말도 나온다. 우 전 수석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 않아 깡통수색 논란을 야기했고 마지못해 소환하면서는 극진히 예우를 해 '황제소환' 논란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지난 해 말쯤 김수남 검찰총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장시간 우 전 수석과 전화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총수와 특수본부장이 수사 대상자인 피의자와 전화통화를 했다면 수사를 조율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세 번 네 번을 수사한 들 검찰의 수사의지를 곧이 곧대로 믿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찰의 영장 청구가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 전 수석이 기자들에게 "그동안 수고 많이 했다"고 한 게 왠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물론 우 전 수석의 영장이 기각이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의 수사에도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는 판단을 받는다면 검찰이 재판을 통해 유죄를 입증하기는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우 전 수석에 대한 부실수사의 몫은 고스란히 검찰로 되돌아올 수 밖에 없다. 정치권은 일제히 검찰 수사를 비판하고 나섰고 집권이 유력한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통한 검찰 개혁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은 미소를 지은 채 검찰청사를 떠났지만 '우병우의 덫'에 걸린 검찰은 차기 정권의 개혁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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