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사능 급식 반대' 기자회견이 불법? 고무줄 잣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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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열린 기자회견인데 한 곳만 집시법 위반 혐의 적용

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동시에 두 곳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 대해 경찰이 한 곳에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법 집행이 주먹구구이다 못해 자녀 안전을 걱정하는 표현까지 제한하는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 같은 주체, 같은 내용, 같은 형식…한 곳만 불법

기자회견으로 '인정'받은 서울 광화문 광장 회견은 되레 피켓이 더 많고 화려하다. (사진=윤지나 기자)

 

방사능급식연대 회원들과 학부모들은 지난 2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충북 청주시 식품의약품안전처 앞에서 학교 급식에 방사능 안전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각각의 장소에서 "방사능은 미량이어도 안전하지 않으며 세포분열이 활발한 아이들에게 더욱 위험하다"며 정부에 안전기준을 마련할 것 등을 촉구했다.

20여 명의 회원들과 학부모, 아이까지 참석한 것이나 기자회견의 내용과 주체를 담은 플래카드, 피켓, 기자회견문까지 두 곳이 동일했다. 경찰도 양쪽 모두에 있었다. 급식연대 관계자들은 제지가 있을 경우 받아 들일 용의가 있었지만, 현장의 경찰은 미신고집회라 문제 삼지 않았다. 덕분에 회견은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문제는 식약처 앞에서 이루어진 기자회견에 대해서만 경찰이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그달 말 식약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전선경 급식연대 공동대표에게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취했다.

기자회견은 사전 신고 없이 가능하지만 집회의 경우 집시법에 따라 신고를 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 적용이 그때 그때 다르면 안된다"면서도 "청주의 경우 구호를 외쳤기 때문에 집시법 위반이라고 판단해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식약처 앞 현장에서는 기자회견문이 낭독된 게 전부였다. 전 공동대표는 "일본산 수산물 및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하라"라고 주장하는 4개 문장을 구호라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미신고 불법집회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 오송 식약처 앞 기자회견은 지나가는 시민조차 없어 썰렁한 분위기에서 30분도 안돼 마무리됐다. (사진=윤지나 기자)

 

오해를 받은 기자회견문 속 이 문장들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도 똑같이 낭독됐다.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한 김소영 공동대표는 "'이건 구호 아닙니다. 기자회견문 낭독이고 따라 읽는 것일 뿐'이라고 하니까 주변에 있던 경찰들도 웃었다"며 "청주에서만 그걸 문제 삼는 건 결국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실제로 다른 점이 있다면 취재진이 몰린 서울과는 달리 청주의 경우 기자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찰청이 댄 혐의 적용 근거는 아니다. 전 공동대표는 "현장에서도 기자들에게 참석전화를 계속 돌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기자회견문만 낭독하고 바로 끝냈다"고 말했다.

◇ 시민단체 "정권에 민감한 내용이거나 경찰 괘씸죄"

경찰이 관련 법을 주먹구구로 적용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오죽하면 전 대표는 경찰 조사를 받으라는 경찰 전화를 믿을 수 없어 보이스피싱을 의심했다고 한다.

기자회견이 잦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회견 주제가 정권에 민감하거나 현장에서 경찰에 밉보이는 일이 발생할 경우 집시법 혐의가 적용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예를 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인 지난 해 4월 대검찰청 앞 기자회견의 경우 참가자들이 '멍멍'이라고 합창했다는 것이 집회의 증표인 구호라며 집시법 위반이 됐다. 반면 탄핵 국면 이후 정권 비판 기자회견은 거의 문제가 없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김선휴 변호사는 "경찰이 기자회견을 미신고 집회라고 규정하는 근거가 워낙 자의적이다 보니,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면서 "기자회견이 아닌 미신고집회라고 해도, 공공의 질서를 해치지 않고 평화롭게 진행된다면 헌법적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현행 집시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 기자회견이 불법인지 경찰 마음, 그때 그때 달라"
19일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을 취재한 결과 경찰이 뚜렷한 기준 없이 집시법을 적용하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해 12월 21일 서울환경운동연합 이세걸 처장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환경적폐청산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했지만 당시 집회의 증표인 구호를 제창 했다는 이유로 입건됐다. 같은 달 있었던 다른 기자회견 역시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경찰은 유독 한 건만 입건을 했다. 환경운동연합 측은 "같은 장소가 아니라고 해도 지난 해만 20번 넘게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기자회견 형식은 건마다 특별히 다를 게 없다"고 했다.

총선시민네트워크의 경우 낙선운동과 관련해 경찰이 압수수색에 나서자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지난 해 4월 검찰청 앞에서 진행했다. 염형철 조직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까지 받았다. 주제는 다르지만 기자회견이 잦았던 이 단체에서 경찰이 문제로 삼은 것은 이 때뿐이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해 12월 중 4번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모두 구호를 외쳤지만 경찰이 한 건에 대해서만 불법집회 혐의를 적용했다. 미신고 불법집회이자 통행을 방해했다는 게 이유였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를 제기해온 노동단체인 반올림의 경우 지난 달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날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 하다 제지를 당했다. 반올림 측은 "법원 100m 이내 집회 금지 때문에 제지한다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었지만 태극기 집회는 아예 법원 안에서 진행됐다"며 기준이 자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시민단체들은 경찰에 불법집회로 찍혀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는 사례가 수 없이 만다. 총선낙선 기자회견이나 경남도청 무상급식 관련 기자회견 등도 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김석휴 변호사는 "경찰의 자의적으로 집시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다보니, 단체 측에서는 솔직히 어떤 기자회견이 불법이 될지 가늠할 수가 없다"면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들은 현안 대응하느라 바빠 관련 문제에 대해 개정안 제출 등으로 한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각각 대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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