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실력·집중력 부재가 불러온 고척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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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서울라운드’ 한국과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대5 로 네덜란드에 패한 한국 대표팀이 고개숙인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한국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국가대표팀은 2월 중순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 캠프에서 총 세차례 연습경기를 펼칠 예정이었다.

일본프로야구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그러나 LG 트윈스 퓨처스리그 팀과의 연습경기 일정은 취소됐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투수가 부족해 안되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전지훈련 캠프에는 오승환을 제외한 12명의 투수가 있었다. 그런데 불펜 피칭을 시작하지도 못한 투수가 3명이나 됐다. 9명으로 3경기를 치르기는 분명 무리였다. 대표팀은 아마도 최소 12명은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연습경기 일정을 편성했을 것이다. 투수들의 몸 상태는 코칭스태프의 예상만큼 빠르게 올라오지 않았다.

김인식 감독의 구상은 이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대표팀은 투구수 제한 규정을 잘 활용하는 마운드 운용으로 승부를 걸 계획이었다.

지난 1회 대회(4강)와 2회 대회(준우승)의 성공은 효율적인 마운드 운용에서 비롯됐다.

대표팀은 2006년 제1회 대회에서 전체 참가국 중 가장 좋은 2.00의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제2회 WBC에서도 난적 일본과 5번이나 맞붙었음에도 불구하고 팀 평균자책점 3.00으로 선전했다.

당시에는 투수진 요소요소에 믿을만한 투수가 있었다. 제1회 대회에서 박찬호는 마무리 투수와 선발을 오가며 활약했고 오승환, 구대성 등이 뒷문 단속을 책임졌다. 제2회 대회에서는 봉중근과 윤석민의 활약이 눈부셨고 정현욱은 '국민 노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불펜에서 힘을 실어줬다.

◇'준비된' 투수가 부족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오승환을 제외하고 투수들의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차우찬을 비롯해 다수의 투수들이 평소 구속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전에서는 10회동안 2점밖에 내주지 않았지만 과정은 불안했다. 제구 난조가 심각했다. 마운드 운용에 승부를 걸었던 김인식 감독과 선동열 코치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김인식 감독은 오키나와 캠프 초반에 "준비 기간이 한달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때부터 염려한 투수들의 컨디션은 끝내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고 대표팀의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다.

KBO 리그는 전형적인 타고투저 리그다. 타자를 압도할만한 투수가 많지 않다는 평가다. 선수층의 부재는 '준비된' 투수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김광현을 비롯한 리그 간판 투수들의 부상 공백도 대표팀에게는 뼈아팠다.

대표팀은 이스라엘에 1-2로 졌고 네덜란드에 0-5로 졌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 WBC 대회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예고했다. 2라운드에 오르지 못했던 2013년 대회에서도 2승은 챙겼다. 아직 2라운드 진출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네덜란드가 대만, 이스라엘에 연패를 당해야 한다.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의 수'다.

◇김인식 감독 "네덜란드전, 실력차가 났다"

김인식 감독은 7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패한 뒤 "실력 차이가 분명히 있다. 투타에서 실력차가 났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몇년 전까지 KBO 리그에서 활약하다 메이저리그로 건너간 타자들이 대거 불참했다.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의 터줏대감 정근우의 부상 하차를 특히 아쉬워했다. 그래도 이대호, 김태균, 이용규 등 경험많은 베테랑들을 믿었다. 하지만 팀 타선은 19이닝동안 1점을 뽑는데 그쳤다.

지난 WBC 대회를 돌아보면 매경기가 전반적으로 투수 놀음이었다. 각팀 타자들의 컨디션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나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상대 투수가 좋았기 때문에 치기 어려웠다"는 김인식 감독의 말은 스프링캠프 기간에 열리는 WBC 대회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선수 구성의 난항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 야구를 대표할만한 최정상급 타자 일부가 빠진 상태로 대회를 시작한 코칭스태프의 걱정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는 실력의 차이를 나타나게끔 했다.

WBC 네덜란드 대표팀 프로파가 7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서울라운드’ 한국과의 경기 1회말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2점 홈런을 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황진환 기자)

 



◇집중력의 분산 그리고 불운

지난 대표팀이 늘 100% 전력이었던 것은 아니다. 야구 팬에게 WBC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일본과의 짜릿한 승부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 도쿄돔에서 터진 이승엽의 극적인 8회 역전홈런, 2009년 도쿄돔을 침묵에 빠뜨렸던 1-0 승리 등은 한국 야구 역사를 빛낸 순간들이다. 객관적 전력 열세를 집중력으로 넘어섰던 역사다.

한일전은 그 자체만으로 대표팀 선수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을 꺾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게는 나름의 동기부여가 있었다.

이스라엘 선수들은 유대인이라는 동질감으로 하나가 됐다. 또 대다수가 마이너리거 혹은 야구 경력을 새롭게 펼쳐나가려는 선수들이었다. 각국 스카우트들이 주목하는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이번 대회를 트라이아웃처럼 여기는 선수들도 있었다.

아이크 데이비스는 "큰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는 달리 네덜란드에는 현역 메이저리거가 많다. 다수가 대표팀 합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디디 그레고리우스는 "처음으로 국가를 대표해 WBC에 나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4년마다 한번씩 모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팀을 위해 자존심도 내려놨다.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유격수 안드렐톤 시몬스를 존중해 보스턴의 유격수 잰더 보가츠와 뉴욕 양키스와 유격수 그레고리우스는 각각 3루수와 지명타자 역할을 받아들였다. 2루수 주릭슨 프로파는 메이저리그에서 한번도 서보지 않았던 중견수로 뛰었다.

반면, 대표팀의 시선은 다소 분산돼 있었다는 느낌을 풍겼다. 대표팀은 준비 기간 내내 'WBC 후유증'을 신경썼다. 대표팀 합류가 오버 페이스 혹은 부상으로 이어져 리그 경기력에 영향을 주면 안된다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당연히 잘못된 발상은 아니다. 다만 필사적으로 이번 대회에 임한 A조 라이벌들의 분위기와는 달랐던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워보인다. 또 조심스럽게 팀을 이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양의지, 김재호 등 부상자가 나왔다. 대표팀에게는 큰 불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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