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굴비야,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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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정호승 (시인)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참 위로가 되죠. 오늘 화제의 인터뷰 듣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시를 쓰는 분, 시인 정호승 선생을 만납니다. 12번째 시집을 내셨어요. 제목이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아니, 어느 때보다 희망이 필요한 시대에 희망을 거절한다고 하니까 좀 희한하죠. 어떤 뜻인지 시인에게 직접 듣습니다. 화제의 인터뷰 정호승 시인 연결을 해 보죠. 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 정호승>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현정> 반갑습니다. 4년 만에 신간을 들고 나오셨어요?

◆ 정호승> (웃음) 4년이라는 햇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또 그동안 시인은 항상 시를 써요. 시인으로서의 어떤 그런 존재 가치가 있기 때문에, 제 존재 가치를 제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 그냥 시집을 낸 겁니다.

◇ 김현정> 그런데 제목이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네요?

◆ 정호승> 그것은 역설이고요. 역설이자 반어다라고 생각하시면 되겠고요.

◇ 김현정> 역설이자 반어다?

◆ 정호승> '희망을 간절히 소망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정호승 시인.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얼마나 희망을 간절히 소망하면 거절한다고 했을까, 이게 시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언뜻 이해는 안 되는데요? (웃음)

◆ 정호승> 제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된 시를 한번 낭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보다 더 '희망을 거절한다'라는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현정> 맞아요, 맞습니다.

◆ 정호승> 낭독하겠습니다. (* 낭독은 생략본. 이하 '희망을 거절한다' 전문)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이러한 내용의 시입니다. 조금 관념적일 수도 있고 그런데요, 희망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망의 가치 또한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 김현정> 좋은 말씀이네요, 좋은 말씀이네요. 이번에도 역시 '절망에 빠진 그대여 힘내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던지시는 거네요. 저는 시집 가운데 이 시도 참 좋았어요. '굴비에게.'

◆ 정호승> 아, 네.

◇ 김현정> '굴비에게. /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제가 중간 중간 좀 생략해서 읽었습니다마는 어떻게 청춘 생각하면서 굴비를 떠올리셨어요?

◆ 정호승> 원래 굴비가 되기 위해서는 조기가 천일염에 절여져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렇죠? 그 고통의 과정을 거쳐서 맛있는 굴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혹시 이 시대를 사는 청춘들이 오늘날 자신의 현재적 삶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진정한 굴비가 되기 위한 하나의 어떤 과정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 김현정> 돌이켜보면 천일염에 막 절여지던 그 어렸을 적, 그 청춘 시절에는 이게 꼭 필요한 건지 뭔지 모르고 너무나 고통스럽잖아요?

◆ 정호승> 그렇죠. 그런데 그것이 천일염이라고 스스로 깨닫게 해 주는 어떤 화자의 말, 특히 이런 시의 말이 있으면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게 되기도 하기 때문에 시가 필요하죠.



◇ 김현정> 맞아요. 그러네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문학이 있고 시가 있고, 정호승 시인 지금 만나고 계십니다. 그나자나 정 선생님, 정호승 시인의 시 가운데 제일 많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건…'아무래도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저 이 시 정말 좋아하거든요.

◆ 정호승> 그 시에서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그 한마디가 그 시의 어떤 핵심 구절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 김현정> 그렇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정호승> 인간은 외로운 존재예요.

◇ 김현정> 선생님은 언제 그렇게 제일 외로우셨어요? 외로움을 혹시 지금도 느끼세요?

◆ 정호승>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인생의 어느 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것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죽음을 기다리는 어떤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어떤 존재적 외로움은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삶 속에 문득 밀물처럼 또는 절벽을 향해서 달려오는 파도처럼 그렇게 외로움이 몰아쳐올 때, 왜 외로운가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도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외로움 속에서… 외로움을 감당하면서 견디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구나라고 그 외로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김현정> 좋은 말씀, 좋은 말씀. 정호승 선생님, 주말 앞두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걸 느끼는데요.

◆ 정호승>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사실은 다른 이야기 준비 많이 했는데요. 저는 다른 거 필요 없고요. 정호승 선생님의 시인의 음성으로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그 시 '수선화에게' 이거 한번 낭송을 부탁드리면 어떨까요? 저희가 잔잔하게 좋은 음악 깔아드릴게요. 낭송을 좀 해 주시면서 인사 나누면 다른 말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 정호승> 그렇습니까?

◇ 김현정> 괜찮으시겠어요?

◆ 정호승> 그러면 제가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자, 음악 준비됐습니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내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제주 수선화(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감사합니다. 훈훈한 위로가 되고요. 나만 외로운 게 아니다라는, 여러분 모두 위로가 되셨을 거예요. 정호승 선생님, 건강하셔야 되고요.

◆ 정호승> 감사합니다.

◇ 김현정> 앞으로도 이런 위로의 시, 희망의 시 많이 써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웃음)

◆ 정호승> 네. 시인이 할 일은 시를 쓰는 일밖에 없으니까요. (웃음)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 김현정> 오늘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 정호승>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고맙습니다.

◇ 김현정> 안녕히 계세요. 고맙습니다. 12번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를 펴냈습니다. 정호승 시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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