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朴 대통령 '안현수 언급'도 최순실 입김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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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서 그때 저를...' 소치올림픽 당시 기자회견에 나선 쇼트트랙 스타 안현수(왼쪽)와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자료사진=윤창원 기자)

 

대통령의 위세를 업고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씨. 특히 딸과 조카 등 일가를 동원해 한국 체육 전체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인사와 함께 K스포츠재단을 통해 생활체육과 엘리트 스포츠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던 계획이 밝혀졌다.

동계스포츠 종목 역시 최 씨 일가가 손에 넣으려는 정황이 포착됐다. 최 씨의 조카이자 승마 선수 출신 장시호가 사무총장을 맡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통해서다. 문체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영재센터는 이미 유망주들의 전지 훈련비의 상당 부분을 착복한 정황이 드러난 상황이다.

최 씨 일가의 동계스포츠 접수도 수년 전부터 사전 정지 작업이 진행돼 왔다는 분석이다. 특히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기간 박근혜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빙상계에 대한 정상화를 요구한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최순실의 입김 속에 대통령까지 나서 최 씨 일가의 동계스포츠 장악을 도왔다는 의혹이 새삼 강하게 제기되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 언급으로 쇼트트랙 대부 사퇴

소치올림픽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쇼트트랙 스타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를 언급한 바 있다. 안현수가 한국 국적으로 버리고 러시아 대표로 출전한 데 대해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한 지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안현수의 귀화가 파벌주의, 줄세우기 등 체육계의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현수는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 등 한국의 쇼트트랙 황제로 군림했다. 그러나 2008년 무릎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고, 이후 태극마크도 달지 못했다. 2011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안현수는 이후 러시아로 귀화해 소치올림픽에서 500m와 남자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황제의 귀환을 알렸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안현수가 왜 한국을 떠나야 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단 1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한 한국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 상황과 맞물려 빙상계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 안현수가 빙상계의 파벌 싸움에 희생양이 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박 대통령까지 나서 진상 조사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자료사진)

 

이에 따라 '한국 쇼트트랙의 대부' 전명규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사퇴해야 했다. 전 부회장은 1987년 대표팀 코치로 시작해 2002년까지 감독 등 지도자를 맡아 최고의 성적을 냈다. 지도자 이후 2009년부터 연맹 부회장을 맡는 등 김기훈, 김동성, 김소희, 전이경, 안현수 등을 발굴했다. 그 사이 한국 쇼트트랙은 무려 21개의 올림픽 금메달로 효자 종목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대통령의 서슬푸른 지시에 전 부회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 이 과정에는 일부 빙상계 인사들의 강한 비판도 한몫을 했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는 연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들의 귀화 배경에 파벌 싸움과 연맹의 부조리가 있었고, 특히 전 부회장을 겨냥해 연맹 고위 인사의 전횡이 극심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빙상계 인사들도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장명희 전 연맹 회장을 중심으로 한 재야 인사들이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와 지도자 출신 인물들도 합세하면서 연맹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연맹은 전 부회장 사퇴와 함께 '평창 대비 빙상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쇄신안을 내놨다.

▲"반대파 제거해 권력 차지하려는 시도"

하지만 체육계에서는 빙상계 재야 인사들이 안현수를 빌미로 삼아 연맹 권력을 차지하려 한다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됐다. 한때 연맹을 쥐고 흔들다 일선에서 물러난 장명희 전 회장이 권토중래를 노린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안현수는 소치올림픽 결산 인터뷰에서 자신의 러시아 귀화에 파벌싸움과 연맹의 부조리가 큰 이유는 아니라고 밝혔다. 부상으로 인해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해 기회를 찾아 러시아로 왔다는 것이다. 특히 안현수는 아버지 안기원 씨의 주장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주변에서 들고 일어나 연맹을 공격한 것이다. 안현수의 귀화를 이용해 빙상계 주도권을 쥐려는 불순한 의도가 끼었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그동안 쇼트트랙의 파벌 문제는 분명히 있었지만 사실 안현수는 연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쇼트트랙 스타로 자란 부분이 컸다. 전 부회장이 사퇴해야 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으로 구속된 최순실씨가 4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는 모습.(자료사진=이한형 기자)

 

이런 일련의 과정에 최순실 일가가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빙상계 인사는 "전 부회장을 물러나게 했던 장명희 전 회장을 중심으로 한 인사들을 한번 보라"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이후 장시호가 맡은 영재센터에 가 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의 엄명 속에 최 씨 일가가 반대파를 제거한 뒤 자기 세력으로 빙상계를 접수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있는 대표적인 빙상계 인사는 이규혁 전무이사다. 장시호 사무총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체육계 인사는 "이규혁을 비롯해 제갈성렬 이사 등도 영재센터에 있다"고 말했다.

전 부회장은 지난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기술위원으로 연맹의 추천을 받았다. 그러나 석연찮은 이유로 결국 추천이 무산됐는데 상위 기관인 문체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엄명에 물러난 인사를 복귀시킬 수 없다는 게 배경으로 꼽힌다.

이는 대통령에 찍혔던 문체부 전 인사들과 비슷한 상황이다. 2013년 국내 승마 대회에 출전했던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해 불리한 감사 결과를 내놨던 문체부 체육국장과 선임과장은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려 대기 발령됐다. 이후 다른 보직을 받았지만 "이 사람들 아직도 있어요?"라는 박 대통령의 말에 완전히 공직을 떠나야 했다.

최순실 일가는 2013년 박 대통령의 체육계 비리 척결 지시로 일사천리로 한국 스포츠를 접수했다. 동계스포츠의 경우도 똑같은 시나리오였던 셈이다. 2년 전 대한민국은 소치올림픽에 대해 석연찮은 피겨 판정을 놓고 '부덕의 소치'라고 비난한 바 있다. 러시아만 비난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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