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4살, 양치질 배워본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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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임청소년 보고서③] 몸도 마음도 방치된 아이들

최근 가정폭력과 학대에 희생된 아이들의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드러나지 않은 한편에는 희생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난 아이들이 있다. 집에서 갖고 나온 아이들의 상처는 사회에서 치유되지 않는다. 더 심해지고, 곪아터진다. 대전CBS는 몸도 마음도 방치된 아이들의 상태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아빠한테 맞아 죽겠다 싶었죠" 모텔방 전전하는 아이들
② 16살 주희가 노래방 도우미로 빠진 이유는
③ "나는 14살, 양치질 배워본 적 없어요"
집에서 갖고 나온 아이들의 상처는 사회에서 치유되지 않는다. 더 심해지고, 곪아터진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호정(가명·14·여)의 치아는 70대 판정을 받았다. 썩은 치아를 방치해 곳곳이 상하고 내려앉았다. 10대이지만 임플란트 치료가 필요할 정도다.

호정은 집에서 양치질을 배워본 적이 없다. 집을 나간 어머니와 술만 마시던 아버지. 아기 때 양치질을 해주거나 자라면서 '치카치카'를 가르쳐주는 부모는 없었다.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의 손정아 소장은 호정과 같은 아이들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집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이, 집을 떠나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가뜩이나 약했던 치아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요. 10대인데도 어금니가 없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치과 치료에 시기를 놓치는 아이들도 있고요."

양치하기는 아이가 태어난 뒤 가정에서 이뤄지는 기본적인 교육이다. 사실상 가족에게 기본적인 관심과 사랑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집에서 받은 상처는 집을 떠나서도 아이들 몸 곳곳에 증거를 남긴다.

수현(가명·18)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하는 모습을 봤다. 10년이 지나도 그 모습은 수현의 눈앞에 선명했다. 아버지의 폭력이 수현에게 향하면서 그는 집을 나왔다. 그래도 눈앞에서 그 장면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현은 지금도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어떤 말에도 담담하던 수현은 "외롭지 않느냐"는 한마디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거리에서 구조된 정아(가명·여)는 '경계성 지능' 판정을 받았다. 지능지수(IQ) 76.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일상생활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혼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일을 해내는 것도 힘들어한다.

청소년 지원단체의 활동가들은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가운데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경계성 지능의 가장 큰 후천적 요인으로는 '부모의 무관심한 양육'이 꼽힌다.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영양부족에 성장 과정에서의 학대와 방임 등으로 퇴행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당수가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더 문제다.

스스로 병원을 찾는 수현이나, '경계성 지능'이라는 것을 뒤늦게라도 알게 된 정아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으로 꼽힌다.

현정(가명·16·여)은 가장 힘들었던 상황으로 2주 전 일을 꼽았다.

"혼자 있는데 목이 너무 아팠어요. 물도 못 삼키고 눈물만 계속 났어요. 울다가 쓰러지고 밥도 못 먹고..."

현정은 병원에 갈 돈이 없었다. '타이레놀 8알'을 한꺼번에 털어 넣는 것으로 고통을 마비시켰다.

대전시 이동일시청소년쉼터의 한형기 팀장은 "선생님 아파요"라고 말하는 정수(가명)의 다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살이 패이다 못해 뼈가 드러날 정도였기 때문. 한 팀장은 정수와 함께 병원에 다녀온 순간을 떠올리며 "아이들은 웬만해선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죽을 만큼 아파야 겨우 아프다고 말하는 아이들이에요."

자신의 아픔에 대한 '침묵'은 방치된 아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증상이다.

어른에게 따뜻한 눈길도, 도움도 받은 적이 없는 아이들은 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외면하는 것으로 현실을 견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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