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한테 맞아 죽겠다 싶었죠" 모텔방 전전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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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임청소년 보고서 ①] 학대 피해 집 떠난 아이들의 주거 실태

최근 가정폭력과 학대에 희생된 아이들의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있다. 바로 희생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난 아이들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 아이들은 가출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또 다른 학대와 방임에 놓여있었다. 대전CBS는 '살아남은' 학대·방임청소년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돌아갈 집이 없어 거리를, 모텔방을 전전하고 있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아빠한테 맞아 죽겠다 싶었죠" 모텔방 전전하는 아이들
(계속)
대전 원도심의 한 모텔촌. '달방'이나 '월세 환영'을 내건 모텔 다수는 집을 떠난 아이들이 찾고 있었다. (사진=김정남 기자)

 

대전 원도심에 밀집한 오래된 모텔들. 텅 빈 건물 사이사이에 남아 '달방'이나 '월세 환영'을 내건 이들 모텔은 아이들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현아(가명·16·여)는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뒤 이 모텔촌을 떠돌았다.

2만원을 내면 하루, 30만원을 내면 한 달을 머무를 수 있다고 했다.

3평(9.9㎡) 남짓한 객실에는 배달음식점 전화번호가 다닥다닥 붙은 작은 냉장고와 브라운관 텔레비전, 냉온수기가 있었다. 벽지에서는 곰팡내가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현아는 이곳이 "아늑하다"고 했다.

부모님은 안 계셨다. 할아버지는 현아를 자주 때렸다. 고모는 현아에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폭언을 했다. 현아는 "그 사람들의 장난감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집을 떠나 모텔방에서 한 달을 지낼 수 있는 30만원을 마련하는 과정은 어렵고, 서글펐다.

식당과 술집을 돌며 파인애플을 팔았다고 했다. 사장은 현아가 하루에 40개를 팔아 와야 10만원을 줬다. 현아는 "8시간을 꼬박 일했는데 40개를 못 팔아 교통비만 받았다"고 했다.

돈을 받는 날에는 2만원을 내고 모텔에서 하루를 지내거나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시켜놓고 잤다. 못 받는 날에는 공원이나 쉼터, 친구 집을 전전했다.

현아는 "술 마시고 비위맞추는 것만 빼면 '보도'가 제일 나아요. 일한 만큼 주니까..."라고 했다. 불법 노래방 도우미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30만원도 그렇게 모았다고 했다.

현아와 같은 이유로 집을 나온 여진(가명·14·여)은 아직 돈을 모으지 못했다. 10대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제대로 된 일자리는 거의 없다고 했다.

별수 없이 지하철역사, 지하상가, 공중화장실, 공원 벤치를 떠돌았다.

아버지와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여진을 '막 때렸다'. 아버지는 엄마를 막 때린 적도 있고 언니에게 소주병을 던진 적도 있었다. 엄마와 언니는 집을 나갔다. 여진도 집에 있다가는 죽겠구나 싶었다.

나오긴 했는데 역시 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원룸이라도 구하고 싶었지만 '막 때리는 아버지 없이' 미성년자 혼자 계약서를 쓸 수는 없다고 했다.

미주(가명·16·여)는 그런 상황일 때 '오빠들'이 손을 내밀었다. 집을 구해주고, 휴대폰도 마련해줬다. 가족이 없어진 미주에게 보호자 역할을 했다.

'오빠들'은 대신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했다. 조건만남을 알선하고, 성매매를 요구했다.

미주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나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줬고...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성매매는) 무서웠어요"라고 털어놨다. 미주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게 접근해 성매매를 시키고 돈을 뜯어내는 '나쁜 어른들'이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미주는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불법으로 일을 시작하고, 또 묶인다"고 했다. 일도, 머물 곳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여진은 "그냥 놀고 싶어서, 반항심에 집을 나오는 아이들도 물론 있다"며 덧붙였다.

"다만 그런 애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요. 집에 가면 받아줄 거 알고 있거든요."

"돌아갈 곳 없는 아이들만 남는다"는 게 여진의 설명이다.

미주는 왜 청소년 보호시설이나 단체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곳에 연락하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현아는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바깥 생활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보다는 밖이 덜 힘든 곳이었다"는 게 현아가 얻은 씁쓸한 결론이다.

대전시이동일시청소년쉼터의 이계석 소장은 "전국적으로 쉼터가 일시, 단기, 중장기 유형 가리지 않고 119곳이 있는데 수용가능 인원은 1~2만명 정도"라면서 "현재 가정 밖 청소년은 최하 28만명에서 많게는 36만명까지 추산되고 있다"며 이렇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이들은 대체 어디에 가 있을까요?"

인천 11살 여아 학대 사건 이후 정부는 무단결석 초등학생 전수조사 등 또 다른 학대 피해 아동들을 찾아 나섰다.

행정 빅데이터를 활용한 상시 발굴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학대와 방임을 피해 거리로 나와 있는 아이들의 거주 실태는 여전히 '사회의 방임' 속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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