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보다 '상술'…첫 영리병원 '뱀파이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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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적용 안돼 영향 없다"지만…의료비 급등 부를 개연성 높아

 

정부가 10년 논의 끝에 사상 첫 국내 영리병원 설립을 승인하면서, 이른바 '뱀파이어(흡혈귀) 효과'로 불리는 의료비 급등과 이에 따른 국민 건강의 '빈익빈 부익부'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뱀파이어 효과'는 흡혈귀에 물린 사람도 흡혈귀가 되는 것처럼, 영리병원 한 곳의 진료비가 높아지면 다른 비영리병원도 연쇄적으로 진료비를 높이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월스트리트 자본의 영리병원이 득세하는 미국에서 돈없는 서민들이 병원을 찾지 못하는 부작용을 두고 하버드의대 힘멜스타인 교수가 이 용어를 처음 썼다. 지난 2007년 국내서도 논란의 중심이 됐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미국과 달리 '전국민 건강보험'에 '비영리 의료체계'를 근간으로 삼아온 우리 나라도 앞으로는 '뱀파이어 효과'를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하긴 힘들게 됐다.

보건복지부가 18일 설립을 승인한 녹지국제병원은 "의료법인이 의료업을 할 때 영리행위를 해선 안된다"고 의료법 시행령에 못박은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서게 된 영리병원이다.

 

중국의 부동산 개발사인 녹지그룹이 778억원을 투자해 2017년 3월까지 제주도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에 짓게 된다.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중심으로 내과와 가정의학과 등 4개 진료과목에 국내 의사 9명, 간호사 28명 등 134명의 인력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정진엽 장관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 때만 해도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좋은 건강보험이 있는 곳에선 영리병원이 필요 없다"며 "내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 우리나라에 영리병원을 도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2년 다른 법을 바꿔 제주도와 8개 경제자유구역에는 외국인 투자로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했다. 외국인 투자 비율이 50%를 넘으면 되기 때문에, 국내 자본들이 사모펀드 등을 통해 우회 참여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다른 경제자유구역에도 설립 신청이 잇따를 것"이라며 "특히 국내 비영리 의료법인들도 형평성 문제를 들어 헌법소원 등을 통해 영리병원 전면 허용을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비영리 의료법인들은 수익이 나더라도 의료시설 확충 등에 다시 투자해야 하지만, 영리병원은 투자자들이 수익을 나눠갖는다. 진찰이나 수술 비용도 병원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의료의 공공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당초 영리병원 이용자를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지만, '의료 유치'를 명분으로 외국인 관광객까지 확대한 데 이어 결국 내국인까지 전면 허용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만큼, 비싼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영리병원을 찾는 내국인은 극소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행 건보 체제에서도 비급여 항목이 많은 고가의 병원을 찾는 '비싼 수요'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은 "정보 불균형이 심각한 의료 분야의 특성상 환자들은 '신기술'이라거나 '효과가 좋다'는 의사들의 얘기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며 "현행 비영리 의료체제에서도 이미 의료비가 연쇄 상승하는 부작용이 많다"고 강조했다.

태생적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영리병원은 그 심각성이 더하다. 미국의 경우 영리병원의 진료비가 비영리병원에 비해 20%나 더 비싼 데다, 불필요한 치료나 수술을 권유하는 '과잉진료'도 다반사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익을 내려면 의료비를 올리거나 인력을 줄여야 하는데, 이러다보니 사망률이 비영리병원보다 높아지는 등 오히려 의료의 질이 낮아지는 문제까지 생긴다는 것이다. '인술'(仁術)이 되어야 할 의료가 영리병원 도입으로 인해 자칫 '상술'(商術)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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