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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 그녀가 버스 좌석을 포기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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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로자 파크스는 미국을 변화시킨 거인"

(사진=트위터 캡처)

 

60년 전인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몽고메리페어 백화점 재봉사로 일하던 한 흑인 여성이 퇴근 후 고단한 몸으로 2857번 버스에 올라탔다.

그 당시는 버스 내 백인 좌석과 유색인 좌석이 나뉘어 있는, 이른바 '흑백분리법'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전체 36개 좌석 중 앞줄 좌석 10개는 '백인 전용'이었다.

하루종일 서서 일해 다리가 아팠던 이 여성은 백인 전용 구역 바로 뒷줄에 앉았다. 조금 지나자 버스는 승객으로 가득찼다. 몇몇 백인 승객이 서 있는 것을 본 백인 버스기사가 이 여성을 포함, 앉아있던 4명의 흑인 승객에게 "자리를 비켜주라"고 말했다. 3명은 군말없이 일어나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이 여성은 "싫어요"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보다 버스에 먼저 탔고, 똑같은 버스요금을 지불했으며, 심지어 백인 전용 좌석에 앉아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여성은 그 길로 경찰에 체포됐다. "왜 우리를 밀어내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경찰관은 "나도 모르겠다. 법이 그러하니 어쩌겠나"라고 답했다.

당시 42세였던 이 여성이 로자 파크스(1913-2005). 훗날 미국 흑인인권운동사의 '어머니'로 불리게 된 인물이다.

파크스의 이야기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으로 불리며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무려 1년여 동안이나 흑인들의 끈질긴 버스 보이콧 운동이 이어졌다. 그리고 1956년 미 연방대법원은 몽고메리의 흑백분리 버스탑승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은 그때까지도 '흑백 분리'라는 프레임에 따라 움직이던 미국 사회 전역에 흑인 인권운동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파크스는 나중에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람들은 내가 피곤해서 자리를 안 비켜줬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몸이 피곤했던 게 아니라 매번 포기하고 굴복하는 데 지쳤던 것이다."

그 이후로 파크스는 수십년 간 흑인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가족 모두 오랫동안 신변의 위협에 시달렸다. 외로웠던 싸움을 기록한 자서전에서, 그녀는 흑인으로서 미국에서 이성적인 정신 상태로 사는 게 무척 어려웠다고 적었다. 어린 시절 백인 친구들의 괴롭힘에 벽돌을 들고 저항하며 "'싫다(I don't like it)'는 말도 못하고 살 바에는 괴롭힘 당하는 걸 선택하겠다"고 했던 일도 회고했다.

흑인 인권운동가인 남편과 결혼해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소속으로 조금씩 사회운동에 눈 떠가던 파크스가 60년 전 그날 버스기사에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흑인 인권사의 운명은 지금과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60주년을 맞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설교했던 교회에서 열린 기념 예배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로자 파크스를 생각할 때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평범치 않은 일을 해낼 수 있는지가 가슴에 와닿는다"고 말했다.

또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최근 몇년 간 미국 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백인 경찰의 흑인 탄압 사례도 언급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로자 파크스는 부유하거나 권력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60년 전 오늘 미국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또 그녀를 '거인'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날 그녀가 버스 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버스를 타는 대신 걷기를 선택했고, 그들이 걸었기 때문에 다른 많은 영웅들이 행진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더 완벽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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